[윤성호 칼럼] 누구나 알고 아무나 하는 인문학 <6>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인문학을 함께 공부할 윤성호라고 합니다.

그간 문학, 역사, 철학 등 소위 인문학으로 불리는 공부를 하며 조금이나마 얻은 지식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이번에 컨슈머치와 함께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선 인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종교와 예술과 철학이 어떻게 발생됐는지 살펴본 후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 종교에 관해 고찰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저자의 말>

피타고라스, 교주 혹은 무당?

피타고라스는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지방) 크로톤 섬에 자기만의 신앙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2,000여명으로 구성된 교단의 교주 혹은 목사였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하늘의 뜻을 영매하는 무당이었습니다.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무당, 사이비교 교주 등에 해당한다는 말을 들으면 충격을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가 신비한 종교 집단의 지도자였던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세상의 원리를 수학적 방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종교와 연결해서 생각을 못했을 뿐이지요. 세상이 수적 질서로 이뤄졌으므로 수로서 세상의 모든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던 피타고라스가 뜻밖에 불교의 윤회론을 주장합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피타고라스는 대략 B.C 580 정도에 소아시아 사모스 섬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리스 자연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에게 학문의 기초를 배우고 그의 권유로 이집트로 유학을 가 23년간 머물렀습니다. 이집트에서 고대사회 최고 문명이 축적한 수학, 의학, 건축학, 음악, 천문학, 기하학 등 온갖 지식을 공부했습니다.

이집트 유학생활 중 페르시아의 침공이 있었고 당시에 포로로 잡혀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에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12년을 더 보냈습니다. 뜻하지는 않았지만 그 곳에서 새로운 종교와 문화, 이국적 학문을 섭렵해 당대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 수준의 과학, 종교, 철학의 대가가 됩니다.

56세가 된 이 천재 학자는 고향 근처 크로톤 섬에 정착했습니다. 최고의 석학에게 그리스 문명권의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 것은 당연합니다. 그 사람들을 기반으로 교단을 만들고 자신이 깨달은 자연과 우주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수많은 금기와 주술을 계율로 엮어 당시 그리스 영적세계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합니다.

그는 자기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제자 중에 스승의 모습을 직접 본 이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종의 신비주의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제자들에게 질문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누구라도 ‘아우토스 에페’(어른께서 말씀하시되)를 덧붙이면 불변의 진리가 돼 반박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비주의 비밀교단에서 특이하게 불교의 윤회론을 주장합니다. 그들의 신앙촌을 지배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세계관이 윤회였습니다. 그들은 금욕 생활을 하면서 윤회를 믿고 채식을 합니다. 인도의 불교도들이 그리스에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피타고라스가 불교의 윤회론을 주장했다면 석가모니와 피타고라스 중 누가 원조일까요? 원조를 찾으려면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오리엔트 세계,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이해해야 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오리엔트 세계

우리는 서양문화의 영원한 고향이 고대 그리스 문화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데 서양사람들이 그토록 자부심을 갖는 고대 그리스 문화는 대부분 고대 이집트 문명권에서 넘어온 것들입니다. 또한 고대 이집트 문명의 어머니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입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서양문화의 원형은 그리스가 아니고 메소포타미아입니다.

메소포타미아는‘강과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의 이라크 땅에서 시작된 문명입니다. 인간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짓고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으며 청동기 시대를 열어 인류 최초의 도시 예리코를 건설했습니다. 이곳에서 시작된 문명이 이웃 이집트로 전파돼 이집트 문명을 만들었고 결국 그리스 문화로 계승돼 오늘날 서양의 철학, 더 나아가 서양 정신문명의 페러다임을 구축했습니다.

한편 과거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소아시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묶어 오리엔트라고 불렀습니다. 오리엔트는 ‘해가 뜨는 곳’이라는 의미로 그리스의 동쪽 지방을 가리킵니다. 지금의 이란·이라크·시리아·팔레스타인·터키·이집트 및 인도의 서부까지 포함합니다. 우리는 흔히 오리엔트를 ‘동양’으로 번역해서 쓰기도 하는데 오리엔트는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의 개념이 아닙니다. 오리엔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서 서양 문화권의 동쪽 개념에 불과합니다.

 

페르시아, 오리엔트 세계의 통일

피타고라스가 살던 B.C 500년대에 오리엔트 지역을 통일하고 그리스 땅까지 넘보던 나라가 있었으니 그 유명한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는 그리스 일부부터 터키는 물론이고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란, 이라크, 아르메니아를 포함해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미쳤습니다. 페르시아는 인도서부에서 그리스까지 통치했으므로 당연히 메소포타미아 문명에다 이집트 문명을 더하고 인도의 인더스 문명까지 흡수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그 넓은 땅을 역참제로 엮어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완비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으로 오리엔트 세계의 문화는 인도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이 서로 교류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켜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고대사회가 매우 정체돼 있었기 때문에 문화의 교류가 없었을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오리엔트 세계의 문화는 비행기, 핸드폰, 인터넷 등 현대 기술의 도움 없이도 페르시아의 역참제 덕분에 빠르게 통합될 수 있었고, 제국의 역참제 안에서는 인도의 정보가 이라크를 거쳐 그리스까지 가는데 불과 서너달이면 충분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인도문명이 그리스까지 도달하는데 오백년이나 천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피타고라스와 윤회론의 관계를 풀 열쇠가 존재합니다.

 

피타고라스, 오리엔트의 심장 바빌론에서 윤회론을 공부하다

앞서 우리는 피타고라스가 이집트에서 23년간 머무르며 공부하던 중 페르시아의 포로로 끌려갔다고 배웠습니다. 페르시아의 포로가 돼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으로 끌려간 그는 그곳에서 다시 12년을 더 보냅니다. 이 포로 생활이 그의 학문세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합니다. 그에게는 전화위복이나 새옹지마였습니다. 시대의 천재 피타고라스는 이곳에서 새로운 학문과 문화를 접하고 한 차원 높게 업그레이드됩니다.

이미 말했듯이 이집트는 기하학과 건축학 등에서 당대 최고의 기술 수준을 자랑하던 문명국가였습니다. 그러면 바빌론은 어땠을까요? 바빌론 또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심장이자 오리엔트 세계의 중심으로서 당대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공중 정원, 바벨탑, 바빌론 유수 등 수많은 전설과 역사의 도시입니다. 성서와 그리스 역사서 등 고대 문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화와 문명의 도시입니다. 이 도시를 빼놓고는 고대 오리엔트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수도 바빌론에 최고 수준의 문화와 학문이 흘러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인도의 힌두 또는 불교 문화가 없을 리 없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피타고라스가 12년의 망명생활 혹은 연구생활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천재적인 두뇌의 최고 석학이 미국의 하버드와 예일 대학에서 수학한 후 프랑스·독일·영국 등 유럽에서 전통에 빛나는 심오한 학문의 세례를 또다시 받은 셈입니다.

수학과 과학의 천재이면서 삶과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고자 했고 이집트에서 비교(秘敎)에 빠졌던 피타고라스는 바빌론 생활에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바빌론에서 그간 접해 본적이 없던 명상과 신비의 이국적인 인도철학을 공부했습니다.

한편 윤회론을 불교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윤회론은 석가모니가 독창적으로 창안해낸 불교의 신념체계가 아닙니다. 윤회론은 석가모니 이전에도 인도 사람이면 누구나 믿었던 인도의 보편적 신념 체계였습니다. 인도의 종교는 힌두교든 자이나교든 불교든 모두 윤회론을 가르칩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가 대략 B.C.563-B.C.483 생존했으니 석가모니와 피타고라스(BC.580~B.C.500)는 동시대 사람입니다. 피타고라스가 석가모니와 같은 시대 사람이니 바빌론의 피타고라스는 석가모니가 가르친 불교의 윤회론이 아니라 불교이전의 ‘인도 윤회론’을 공부했을 것입니다.

 

피타고라스의 윤회론과 불교의 윤회론

피타고라스는 영혼의 윤회(Transmigration of Soul)를 주장했는데 인도의 윤회사상과 같을 까요? 먼저 인도의 윤회사상을 봅시다. 인도의 윤회론은 우리의 영혼이 육신을 매개로 끊임없이 돌고 돈다는 사상입니다. 인간이 육신을 매개로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 한, 인간은 영원히 반복되는 지속적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간이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윤회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윤회에서 탈피하는 일이 곧 해탈(解脫)입니다. 해탈을 하면 수행의 최고 목표이며 궁극적 도달점인 열반에 도달합니다. 윤회로부터 근원적으로 벗어난 고통 없는 세계가 열반인 것입니다. 열반이란 니르바나(Nirvan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서 ‘끊어낸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끊어 내는가? 윤회입니다. 윤회를 끊어내 번뇌를 가라앉히고, 다시는 그것이 일어나지 않게 됐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는 금욕과 극기를 동반한 사색을 통해 '나의 존재는 연기(緣起)의 한 고리'라는 깨달음을 얻을 때 비로소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 도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석가모니의 윤회론은 연기라는 근원적 깨달음을 얻으면 윤회의 고리를 끊고 열반에 이릅니다.

피타고라스의 윤회론은 어떨까요? 피타고라스의 윤회는 Transmigration of Soul로서 ‘영혼의 이전(移轉)’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육신을 매개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인도의 윤회사상과 완전히 동일했습니다. 다만, 석가모니가 '나의 존재는 연기(緣起)의 한 고리'라는 깨달음을 통해 해탈한다고 주장하는데 비해, 피타고라스는 '수에 대한 사색을 통해 수적 질서로 이뤄진 우주의 질서를 깨달을 때 윤회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에 대한 철학적 사색이 영혼의 정화를 가져 오고 영혼이 정화되면 인간이 신적경지에 이르러 해탈하게 된다는 믿음입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천재적인 두 분의 선각자가 같은 윤회론을 두고 엇비슷한 결론을 도출합니다.

 

피타고라스,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버트란드 러셀은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피타고라스를 꼽았습니다. 종교적 사색을 통해 얻은 피타고라스의 수리적 세계관이 '사유가 감각보다 고귀하고 사유의 대상이 지각의 대상보다 실재적'이라는 플라톤 사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습니다. 러셀은 서양철학의 원조가 플라톤이나, 플라톤의 원조는 피타고라스이므로 서양철학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피타고라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아니라 피타고라스의 제자라고도 합니다.(피타고라스가 150년 먼저 태어났으니 직접 배운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난 3회 '종교에서 발원한 철학'편에서, 고대 주술의 시대에는 천재적인 일부의 사제와 주술사, 혹은 무당이 종교적 통찰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시대의 선각자 역할을 했고, 이들의 종교적 통찰이 철학의 시대를 열었다고 배웠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종교적 통찰을 통해 얻은 윤회론과 수리주의로 서양철학의 원형을 형성했고 그의 위대한 종교적 통찰의 이면에는 심오한 동양적 신비주의가 깔려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피타고라스를 생각할 때 '피타고라스의 정리(a²+b²=c²)'만 떠올리지 말고 종교적 통찰로 세상과 우주를 새롭게 해석한 영적지도자 겸 철학자, 동서양 철학을 최초로 융합한 천재적 사상가라는 점도 아울러 기억해야 합니다.

 

※저자 윤성호

인문학 대중화를 통해 사회공헌을 추구하는 인문학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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