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칼럼] 누구나 알고 아무나 하는 인문학 <8>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인문학을 함께 공부할 윤성호라고 합니다.

그간 문학, 역사, 철학 등 소위 인문학으로 불리는 공부를 하며 조금이나마 얻은 지식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이번에 컨슈머치와 함께 독자 여러분을 찾아뵐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선 인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종교와 예술과 철학이 어떻게 발생됐는지 살펴본 후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 종교에 관해 고찰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저자의 말>

외계 행성의 지적생명체는 진화론을 알까?

외계 행성에 지적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만화나 SF영화에서 본 우스꽝스럽거나 기괴한 모습이 떠오르겠지요. 실제로 그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정말 궁금합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추론한 그들의 모습은 지구상의 여러 생물들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와 태양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리학적 법칙이 전 우주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지구 생물체의 몸은 탄소화합물(탄소를 중심으로 수소, 산소, 질소 등이 결합한 물질)로 구성돼 있는데 이 원소들은 우주 어디에서도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기본 물질입니다. 또한 지구에서 생존하는 모든 생명체가 태양에서 나오는 열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해 생존하듯 우주의 생명체도 태양과 같은 별에서 나오는 빛과 열로 생존할 것입니다.

우주의 물리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로 생성되고 태양의 열로 물질대사를 하는 존재라면 그 모습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생물종 중 하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 외계인들 역시 자신의 행성이 걸어온 수십억 년의 역사와 함께 진화한 모습이겠지요.

지구의 생물종과 별반 다르지 않으나 지적 수준은 우리보다 수십배 진보해 우주 공간을 마음대로 누비는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칩시다. 어느 날 홀연히 지구에 나타난 그들이 인간에게 던지는 첫 질문은 무엇일까요?

이런 만화 같은 흥미진진한 상상을 과학적으로 제기하고 그 답까지 제시해 준 세계 최고의 천재 과학자이자 철학자가 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인류의 존재 이유를 규명

리처드 도킨스. 19세기에 다윈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리처드 도킨스가 있습니다. 그는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이후 생명 진화의 근본 원인을 가장 독창적으로 제시했고 이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1974년 그의 나이 불과 35세 때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라는 책을 발표해 세계 진화생물학계의 기존 이론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는 이 책 제 1장에서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면 고등한 지적 생명체이고 그 이유를 모르면 평범한 생명체라고 규정하면서, 만일 고도로 발달한 지능을 가진 외계의 지적 생물체가 지구를 방문한다면 그들은 지구인의 수준을 시험하기 위해 “너희들은 진화 현상을 알아냈는가?”를 질문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외계 생명체가 지구의 지적 수준을 점검하려면 존재 이유를 아느냐고 물어야 하는데 왜 진화에 대해 물을까요? 그것은 진화를 알면 자신의 존재 이유는 저절로 밝혀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46억 년 전 불덩이 상태로 탄생한 지구는 점점 식어 40억 년 전 최초의 원시 바다 속에서 첫 생명체를 만들어 냅니다. 이 분자 단위의 생명체가 자신을 스스로 복제해 번식합니다. 자기가 자신을 직접 복제하므로 자기복제자라고 부릅니다. 이 자기복제자는 독립적으로 생존 기술을 연마해 그 기술로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이 자기복제자는 깊은 바다 속의 어딘가에, 혹은 화산 분화구의 유독가스 층에 서식한다는 원시생명체를 말할까요. 아닙니다. 인간의 몸 속에 존재합니다. 정확히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몸 속에 존재합니다.

자기복제자 즉 유전자는 모든 생명체의 몸 속에 자신이 설계한 그 몸을 숙주로 생존합니다. 생명체가 번식에 성공하는 한 그는 그 생명체의 몸 속에서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생각까지 지배하는 유전자 혹은 자기복제자를 위해 존재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유전자의 보전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의 보전을 위해 생존에 필요한 몸의 상태를 변환시킬 뿐이며 이러한 결과의 산물이 진화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생물의 몸을 지배하면서 지구 환경에 맞게 생물의 몸, 즉 자신의 운반 기계를 변화시킨다."

유전자는 생물의 몸 속에서 지속적으로 돌연변이를 양산해 새로운 생물 종의 탄생 가능성을 높이고 지구환경은 자연선택이라는 체로 돌연변이를 걸러 새로운 종을 탄생시킵니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유전자는 운반기계 속에 들어앉아 생존을 하면 그만입니다. 그 운반기계가 사람이든 개든 곤충이든 물고기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은 동일한 자기복제자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한 가족입니다.

도킨스는 자신의 이러한 혁명적 주장을 과학적 증거를 통해 논리적으로 증명해냈습니다. 그의 주장에 학계의 반론이 없지는 않으나 40년이 지난 지금도 굳건히 세계 진화학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론으로 자리를 지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과학적 통찰로 우리 인류는 우리가 왜 진화를 하며 왜 존재하는지를 알게 돼 고등한 지적생명체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우리 인류도 이제 우주의 지성계에서 고등생명체로 자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은 구비한 셈입니다.

 

플라톤, 인류의 고등생명체 등극을 방해 - 에른스트 마이어

자기의 존재 목적을 아는 생명체가 고등 생명체라고 했습니다. 인류는 300만 년 전 유인원에서 갈라졌고,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지혜로운 사람, 생각하는 사람)가 15만 년 전 나타나 1만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지금의 요르단강 서안 예리코)에 인류 최초의 도시를 건설하고 문명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600년 전 자연철학이 태동하면서 자연과 우주의 본질 탐구에 나섰고 2,000년 전에는 인류의 지적 능력이 만개해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크기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지구 모습을 지도로 작성했으며, 히파르코스는 별도 태어나서 사라진다고 추측했으며, 유클리드는 기하학 교과서를 편찬해 후대의 뉴턴과 아인슈타인같은 천재 과학자들도 이 책으로 공부할 정도로 기하학과 수학의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또한 헤론이라는 사람은 증기의 힘을 활용해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초기 증기기관도 만들었습니다.

2,000년 전 이미 증기기관을 만들어낼 정도로 우수한 지적능력을 보유한 호모 사피엔스가 왜 생물의 진화 현상만은 1859년에 와서야 발견하게 됐을까요? 어떤 학자는 지구생명체가 40억 년 동안 진화해 온 것에 비해, 인간은 30년을 한 세대로 짧은 생을 살기 때문에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거슬러 생물의 조상을 밝혀낸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역사상 생존했던 수많은 천재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진화의 실마리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다윈과 같은 시대를 살면서 다윈을 열렬히 옹호해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영국의 의사 겸 동물학자 토마스 헉슬리(Thomas Henry Huxley)는 종의 기원을 읽은 뒤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라고 한탄했을 정도였습니다.

19세기 영국은 개와 소 등의 우량한 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위적인 교배 등을 열심히 실행했습니다. 소위 ‘인위 선택을 통한 종 개량’이 일반화돼 있었습니다. 사람이 개의 형질에 관여해서 짧은 시간에 수많은 종을 만들어냈는데, 자연이 40억 년간 생물의 형질을 변경해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이 그렇게 어려운 발상일까요?

에른스트 마이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는 ‘20세기의 다윈’으로 불리면서 2005년 100살의 나이로 타계한 진화생물학계의 거장이었습니다. 그는 그토록 똑똑한 호모 사피엔스가 어렵지도 않은 진화 현상을 19세기 중반까지도 몰랐던 것은 플라톤 때문이었다고 규정합니다. 정확하게는 플라톤의 ‘본질주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공부하는 학자가 철학의 거장 플라톤을 거론하니 의외입니다. 플라톤의 본질주의가 무엇이기에 진화론 발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됐을까요.

플라톤은 인간의 사고 속에 존재하는 기하학적 논리의 세계만이 완전무결한 세상이라며 이것을 이데아로 규정했습니다. 이데아 세상의 모든 물체와 현상은 절대 바뀔 수 없는 본질적인 것들이므로 우리는 플라톤의 사상을 ‘본질주의’라고 부릅니다.

서양의 지식인들은 플라톤 이래 2,000년 이상을 플라톤의 이데아 속에서 지적 활동을 해 온 사람들이므로 당연히 본질주의에 깊게 물들어 있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개와 고양이 등 지구의 각종 생물 종들이 각인되면, 기하학적 도형이 머릿속에 본질로 굳어진 것처럼 그것들 또한 본질로 고착됩니다.

에른스트 마이어는 바로 이점을 간파해 플라톤 때문에 인류의 진화 현상 발견이 19세기 중반에 와서야 이뤄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플라톤 때문에 자기가 왜 존재하는 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소일하는 우주의 지적 열등생으로 남을 뻔 했습니다.

플라톤의 철학에서 과학으로, 다윈의 과학에서 철학으로

플라톤 사고의 핵심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 작용을 통해 걸러낸 사유 속의 사물만이 완전무결하고 본질적인 실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계산능력이고 추론능력이며 논리적 사고 능력으로서 오늘날의 서양 과학을 만들어낸 실체입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인해 우주선을 만들어 태양계 밖까지 나아가게 됐습니다. 현대의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 등의 눈부신 성취는 결국 논리적 사유를 기반으로 한 플라톤의 기하학적 이성입니다. 그는 철학행위를 통해 찬란한 과학 문명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다윈이라는 천재 과학자는 본질주의라는 서양적 미신을 극복하고 진화 현상을 ‘자연선택’이라는 이론으로 체계화했고, 결국 1859년 <종의 기원>을 발표해 진화론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인간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철학의 근본 문제를 과학적으로 규명해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과학으로 철학을 했습니다.

플라톤은 “우리 눈에 보이는 물체와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고 거짓이다. 머릿속에서 이성적, 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영원무궁하고 참이다. 세상은 참과 거짓, 육체와 정신, 영원과 순간 등 양쪽으로 나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이원론입니다.

이성은 본질이고 물질은 허상이며 인간은 참이고 여타 생물은 거짓일텐데 다윈은 인간도 동물의 일부이고 인간의 사고도 동물에서 진화한 자연의 일부로 해석합니다. 인간과 인간 이성의 절대성을 진리로 여긴 플라톤을 완전히 부정한 것입니다.

다윈 철학의 영향을 받은 다윈의 정신적 제자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도 다윈의 영향을 받아 플라톤을 극복하고 20세기의 세계사를 완전히 바꿉니다.

다윈과 동시대를 살았던 칼 마르크스는 인간의 이성은 물질에 따라 변하므로 인간의 근원적 본질은 이성이 아니라 물질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 이성의 절대성을 부정합니다. 여담으로 마르크스는 다윈의 업적을 너무나 존경해 자신의 저서 자본론의 영역판을 다윈에게 바치려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는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꾸며낸 이야기일망정 마르크스의 다윈 정신에 대한 존경과 찬사의 의미를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좋은 사례입니다.

다윈이 죽은 후 1년 후 마르크스도 죽습니다. 마르크스의 친구 엥겔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윈은 자연의 진화법칙을 알아냈고,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의 진화법칙을 알아냈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할 즈음 태어난 프로이트 역시 인간 이성에 결정타를 날립니다. 인간의 이성은 완벽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인간의 이성은 무의식의 지배와 통제를 받는 불완전하고 허약한 존재일 뿐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정신분석학이 다윈의 진화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다윈의 진화 과학이 철학으로 돌아가 서양 철학의 영원한 고향 플라톤의 심장을 찌릅니다.

플라톤의 기하학적 이성이 과학을 낳았습니다. 플라톤이 낳은 과학이 다윈의 진화론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이 결국 플라톤의 기하학적 이성과 본질주의를 파괴합니다. 과학과 철학이 엮어가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재미있습니다. 역사의 위대한 천재들이 연주하는 철학과 과학의 이중주입니다.

 

※저자 윤성호

인문학 대중화를 통해 사회공헌을 추구하는 인문학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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