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칼럼] 누구나 알고 아무나 하는 인문학 <11>

거부 중의 거부 수닷타 장자를 최고로 아낀 부처님

부처님의 제자 중에 수닷타 장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한자로 음역한 수달(須達)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교 교단의 성립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큰 부자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부자였는고 하니 절터 전체를 황금으로 깔만한 재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생존 당시 가장 오래 머물렀고 가장 많은 법문을 설하신 ‘기원정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을 지어 보시한 사람입니다. 그는 기원정사를 건립할 당시 그 땅의 주인인 코살라 왕국의 태자에게 터의 매각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태자가 요구한 댓가는 그 땅 전체를 도배할 정도의 황금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기꺼이 수락했습니다. 실제 이 정도의 황금을 주고 구매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재력을 상징하는 매우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는 그 땅을 매입해 기원정사를 건립하였고 매일 2,000명의 스님들이 기거하고 수도할 비용도 전부 부담했습니다. 초기 불교의 성장과정에 수닷타의 기여정도가 충분히 가늠됩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도 수닷타에 대해 ‘내 제자 중에 제일 가는 우바새(출가하지 않은 부처님의 남자제자)’라고 말씀하시며 격려합니다.

부처님께서 속세의 가장 돈을 많이 번 부자를 아꼈다니까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이 맞나요?  이 말은 어떻습니까. “벌이 온갖 꽃을 채집하듯 밤낮으로 재물을 얻으라.” 부처님의 말씀이라면 자못 충격적입니다.  〈별역잡아함경〉이라는 초기불교의 경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역시 초기 경전인 〈증일아함경〉에서는 ‘재물을 현재에 가지면 한량없는 복을 얻은 것이다’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당시 부처님은 출가한 수도자와 일반 민중의 돈에 대한 태도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듯합니다.(부처님의 부자수업, 윤성식)

현재의 우리는 불교와 돈과의 관계는 법정스님과 무소유 정도의 수준에서 이해합니다. 돈과는 거리가 먼 맑고 고고한 삶을 살다간 법정스님을 존경하고 기리며 그 삶을 따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삶이 과연 우리에게도 바람직한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는 그러한 삶을 따를 수도 없고 따라야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불교와 석가모니가 수도승이 아닌 일반인에게 바라고 요구한 것은 금욕과 무소유가 아니라 성실하고 근면한 경제활동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예수의 장례를 치른 사람은 유대인 부자 요셉과 니고데모

로마는 국사범의 경우 십자가에 메달아 처형을 한 후 마지막 절차로 죄인의 다리를 꺾어 죽음을 최종 확인합니다. 사형이 집행된 시신은 수숩이 금지돼 들개나 독수리, 까마귀의 먹이가 됩니다. 식민지 주민의 반란을 막기 위해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방편의 일환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는 조금 달랐습니다. 다리나 팔이 꺾이지 않아 시신이 온전하게 보존됐고 사형이 집행된 후 이례적으로 장례가 치러지고 돌무덤에 매장까지 됐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정중하게 치른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난한 예수의 제자들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천국에 들어가기 더 어렵다고 한 부자였습니다. 예수의 장례를 깨끗하게 치른 사람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권력과 부를 소유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유대교의 성직자이자 고위공무원이었던 니고데모입니다.

이 두 사람은 산헤드린 의원 신분의 고급공무원으로서 총독 빌라도와 잘 알고 지낼 정도로 위세가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난한 제자들은 배신자 가롯 유다를 시작으로 전부 숨어 버렸으나, 부와 권력을 소유한 그들이 유대교 사제들과 관원들의 감시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최소한의 의를 실천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9장은 예수가 처형된 후 장례과정을 비교적 소상히 묘사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38절) 일찍이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 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더라(39절,40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농원이 있고 농원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예수를 그 무덤속에 안치시키니라.(41절,42절)」

오늘날 국회의원의 신분 쯤 되는 요셉이 빌라도에게 시신을 인계해달라고 쉽지 않은 요구를 하여 시신을 인계받고 니고데모가 보낸 몰약과 침향을 정갈한 세마포와 함께 시신에 처리한 후 자신이 소유한 농원의 깨끗한 돌무덤에 안장한 것입니다.

가난하다고 의로운 것이 아닌 것처럼 부자라고 불의한 삶을 살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개인의 마음가짐입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의 시신을 수습해 정중하게 장례를 치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을 것이나 이것을 뒷받침할 현실적인 힘이 없었습니다. 돈과 권세가 없으니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삶과 생존은 그래서 절실합니다. 돈 자체는 어떤 경우에도 경원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헬리의 돈, 뉴턴을 통해 현대물리학의 첫장을 열다

아이작 뉴턴(Sir Issac Newton 1642-1727).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 정도로 알고 계신분이 대부분입니다.

아이작 뉴턴은 여러분이 알고 계신 것보다 과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탁월합니다. 그는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미적분을 창안한 수학자로서 근대 이론과학의 선구자입니다. 인류사에 나타난 최고의 천재 중 아인슈타인과 쌍벽을 이룰 정도의 업적을 이룬 대단한 천재 과학자입니다.

그의 탁월한 과학적 업적은 저서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이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 책은 중력의 법칙을 밝힌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과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책은 현대의 과학과 우주의 본질을 밝히는 데 있어 획기적 지평을 연 인류 최고 저서중 하나로 손꼽을 것입니다.

<프린키피아> 2권에 나오는 가속도의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뉴턴 역학체계 전체가 뒤집히는 과정에서도 바뀌지 않고 아직도 살아남았습니다. 비행기가 뜨는 기본 원리인 베르누이 정리, 빛의 파동이론, 빅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여전히 적용되고 과학이론입니다. 그로부터 지구의 자연법칙이 우주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의 이론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퍼졌으며 이 영향으로 18세기 계몽철학자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한 법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해 새로운 철학적 사조가 형성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저서 <프린피키아>는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할 뻔 했습니다. 왜냐하면 뉴턴에게는 이 책을 출간할만한 재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출간해준 돈 많은 부자는 바로 에드먼드 헬리입니다. 그 자신이 천문학자로서 헬리혜성의 존재를 밝혔고 수학에도 밝아 보험료 산출의 근거인 ‘경험생명표’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비누 제조업을 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소위 ‘금수저’인데 인간성까지 좋아 괴팍한 뉴턴을 끊임없이 격려하고 포용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재력으로 인류사 최고 천재의 과학적 통찰을 인쇄해 인류의 과학과 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돈은 가치중립, 사람이 돈의 가치를 결정

세계 성인과 그들의 부자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합니다. 천하의 성인이라도 재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뜻을 펼치기 쉽지 않다는 것이죠.

공자는 상갓집 개 취급을 받았지만 거부의 제자 자공 덕분에 ‘캐딜락’을 타고 주유천하하면서 자신의 뜻을 세상에 설파할 기회를 가졌고 석가모니 또한 기원정사 전체를 황금으로 깔 능력이 되는 최고의 부자 수닷타 장자 덕분에 비교적 편안히 자신의 ‘연기론’을 대중에게 펼치고 사후 교단의 위세도 이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가난한 제자가 아니라 돈 많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도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 현대과학의 기반을 마련한 뉴턴도 돈 많은 그의 친구 헬리의 덕분이었다니 이제 우리는 돈을 벌겠다는 자신의 욕망을 절대 부끄럽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돈 자체는 절대 탐욕적이지도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돈을 소유한 사람이 탐욕적이거나 이기적일 뿐입니다. 돈을 벌려고 애쓰는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입니까? 

 

※저자 윤성호

인문학 대중화를 통해 사회공헌을 추구하는 인문학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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