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칼럼] 누구나 알고 아무나 하는 인문학 <13>

1. 부자의 자질 - 논리와 감성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될까?

부자는 어떤 특성이 있고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사회에서는 유력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대치동에서 고액 과외를 받고 명문대를 입학하고 졸업한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해 양질의 경제·사회교육과 함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거나 집안의 도움으로 창업하면 부자가 됩니다.

금수저로 대변되는 차별적인 외부 환경이 돈 버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외부환경은 대부분의 흙수저는 상상할 수도 없고 노력을 한다고 채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집안 배경이나 물려받은 자본이 아니라 사람 자체의 인격과 자질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면 그 자질을 찾아내고 연마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이런 자질을 찾아내기 위해 부자의 뇌기능 활용을 분석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의 연구결과 있습니다. 부자 중에서도 저학력의 자수성가형 부자들의 뇌 활용 정도를 연구했습니다. 돈 버는 과정에서 집안의 도움을 받거나 학벌 등 외부 환경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므로 그들이 축적한 부는 온전히 그들의 개인적 특성 혹은 자질에서 기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졸 이하의 저학력이면서 돈을 번 자수성가형 부자 그룹을, 대졸 이상의 고학력이지만 평범한 그룹과 비교했습니다. 그들의 연구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자수성가형 저학력 부자들은 첫째, 전체적인 흐름을 읽어 규칙을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났고 둘째, 긍정적이고 열정적 사고를 하며 셋째, 감수성이 아주 예민하다는 것이었습니다.(주간조선 2005.1.3./ 김승범 ‘부자되기 학력지능과 관계없어’)

이들의 첫 번째 특성은 불규칙하게 보이는 일반적 사회현상에서 규칙을 도출해내는 ‘패턴인식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패턴인식능력이야 말로 불규칙하게 보이는 현상에서 일정한 법칙을 찾아내는 행위로서 논리적 사고의 시발점입니다. 저학력 부자들은 많이 배우지 못했는데도 논리적 사고에 능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특성이 재미있습니다. 논리적인 성향의 이 부자들이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되는 감수성도 예민하고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정반대의 특성으로 보이는 논리과 감성이 동시에 발달됐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와 유사한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기 전 목포에서 선박회사를 운영해서 성공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부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는데 그 과정에서 세가지를 터득했다고 썼습니다. 첫째, 경제계 전체의 흐름을 파악해서 그 흐름을 타는 것. 둘째, 적당한 모험을 해야 한다는 것. 셋째, 종업원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뇌활동 연구 결과와 김대중 자선전에서 말한 세가지 요소가 거의 동일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따로 설명을 안 해도 유사성이 금방 느껴질 것입니다. 세 번째도 같은 말입니다. 종업원과 관계가 좋다는 것은 부하직원의 여러 상황을 예민하게 살펴 상호 교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감정이입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인데 감수성이 예민해야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여기에도 흐름을 읽어내는 논리성과 직원과 교감하는 감성의 상반되는 두가지 자질이 동시에 강조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논리력과 감수성을 겸비하면서 긍정적, 열정적, 모험적인 기질이 있어야 될 것 같네요.

또 하나 재미있는 사례는 국내 재벌기업의 창업자들도 철두철미한 계산능력에다 예술적 감수성을 겸비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골동품을 보는 심미안이 탁월해 그 안목이 전문가를 능가했고, 정주영 회장 또한 감성이 충만해 항상 예술가를 끼고 살았으며, 롯데 신격호 회장도 문학적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것으로 유명한데 롯데라는 이름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따왔습니다. 교보생명의 창업자 신용호 회장도 건축미에 관해 남다른 감각을 소유해 광화문 교보생명을 설계할 당시, 전세계를 직접 다니면서 유명한 건축물을 직접 섭렵했습니다. 세계적 건축가 시저 펠리에게 설계를 맡기면서도 건물에 자신의 미적 감각을 관철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코오롱 그룹의 이동찬 회장 또한 자신의 집무실 옆에 화실을 꾸미고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습니다. 재벌회장과 예술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뼛속까지 이해타산으로만 인식되는 그 사람들이 예술가 못지않은 문학적, 예술적 감수성이 있었습니다.

 

2. 글쓰기의 자질 - 논리와 감성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요? 좋은 글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갖춰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간결하게 써야 한다", "주어와 술어가 호응이 돼야 한다", "자신의 내면이 솔직히 드러난 진실한 글이어야 한다" 등등 여러 가지 요건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좋은 글이란 제일 먼저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어야 합니다. 글이란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일인데 앞뒤 문맥도 안 맞고 인과관계는 엉망이며 제시된 근거는 정확하지도 적합하지도 않다면 그 글을 어찌 좋다고 하겠습니까. 인관관계에 오류가 없으면서 명확한 근거가 제시된 논리적 글이야말로 좋은 글의 시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글에 논리만 있고 감성이 없다면, 좋은 글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떤 맛도 느낄 수 없는 증류수 같은 무미건조한 글이 되고 맙니다. 논리적인 일관성이 유지되는 가운데 예술적, 문학적 감수성이 중간 중간에 보석같이 박혀, 읽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고 재미를 준다면 이것이야말로 좋은 글입니다. 글에서 논리만큼 중요한 것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입가에 가끔 빙그레 웃음이 번지게 하는 여유와 여운을 주는 감성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글을 잘쓰는 방법으로 세가지를 제시했습니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생각하라. 이 세가지를 실천하려면 열정이 없으면 곤란하겠지요. 좋은 글을 쓰려면 논리와 감성 그리고 열정이 필요합니다.

 

3. 글쓰기를 통한 상반되는 자질의 조화

부자되기와 글쓰기는 상반되는 두가지 특성인 논리와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꾸준히 열정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보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는 천재의 특성을 갈파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천재성의 징표는 하나의 마음에 두가지 상반된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치지 않는데 있다.(The mark of a first-rate intelligence is the capacity to entertain two contradictory propositions in one mind simultaneously without goning crazy.)

부자를 포함해 특별한 능력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상반되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지면서 그것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천재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분야라도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가집니다. "나무도 보고 숲도 봐야한다”, “현미경의 시각과 망원경의 시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다(多)'와 '정(精)'을 겸하지 않을 수 없으니, 박이정(博而精) 석 자를 표어(標語)로 삼아야 한다”(양주동 면학의 서)등등의 경구가 다 일맥상통합니다.

* 박이정(博而精) : 넓게 보는 가운데 정밀하게 보기

글을 쓰려면 단어 뜻 하나 하나를 정확히 살펴야 하고 단어가 그 문장에서 잘 쓰였는가, 인과관계에 오류는 없는가, 문장 내에서 주어와 술어는 호응하는가, 문장과 문장은 물론 문단과 문단사이의 일관성이 유지되는가 등 글 전체가 서론부터 결론까지 수미쌍관하게 일관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글 한편은 그대로 논리의 덩어리입니다. 글 한 편을 완성하는데 쏟아야 하는 논리적 사고는 수학문제 10문제를 푸는 것보다 결코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을 쓰십시오. 논리적 사고력이 몰라보게 향상됩니다.

감수성은 어떻습니까? 글을 쓰는 사람은 똑같은 사물을 보고도 다른 느낌과 감동을 느끼고 그것을 글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예민한 관찰력이 필요합니다. 예민한 관찰력은 예민한 감수성과 같은 말로서 동전의 앞뒤와 같습니다. 사물의 이면을 보려는 노력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낯선 것을 익숙하게 보려는 시도 등이 여러분의 감수성을 올려줄 것입니다. 감수성이라는 뇌 기능은 타고나야지 노력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수성을 길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독창적인 미를 창조하는 예술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 경제 생활에서 다소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면 그만이고 그 정도는 글쓰기를 통해 길러지는 감수성이 충분히 감당합니다.

좋은 글은 논리적 일관성을 이루는 가운데 미적 감수성이 곳곳에 박혀 빛을 발한다고 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논리와 감성의 조화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활동이니 글을 쓰면 상반된 자질의 조화를 이루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공자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小人소인 同而不和동이불화 君子군자 和而不同화이부동. “시정잡배는 서로 같은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신사는 서로 다른 자질을 가지고 있지만 잘 조화를 이룬다” 정도로 해석됩니다. 2016년 구글 안드로이드 회사의 표어가 Be Together. Not the Same.(조화를 이루자. 같아지지 말고)이었습니다. 공자님의 군자 자질을 잘 배워서 써먹었습니다.

논리와 감성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자질을 한 마음에 품되 조화를 이루는 군자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논리와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군자의 마음을 기르면 부자의 길에 한걸음 성큼 다가섭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은 군자의 마음은 부자가 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자들이 대부분 논리와 감성을 조화시킨 군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논리와 감성이 조화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전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노력을 다할 뿐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깁시다.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 다음회에는 ‘글쓰는 법’을 추가로 게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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