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타 계약자 및 주주 보호 우선"…한화·알리안츠, 동부 등 현장점검 이어질 듯

[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 문제를 두고 금융당국과 생명보험사 간에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소멸시효가 지났더라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할 것을 권고하는 금융당국의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 주요 생보사들은 여전히 대법원 판결 이후로 결정을 미루고 있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자살보험금 미지급, 칼 빼든 금감원…버티는 생보사

생보사를 향한 금융감독원의 압박 수위가 한층 높아지면서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이 지난 6월 말부터 5주 동안 진행한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에 대한 현장점검을 마무리했다.

이번에 진행된 현장점검에선 자살보험금 미지급 규모를 다시 한 번 파악하고, 지연이자 계산 등이 적정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에 대한 검사 결과가 정리되는 대로 이르면 이달 말쯤 자살보험금 미지급 보험사에 대한 추가 현장검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의 다음 칼 끝이 한화생명, 알리안츠생명, 동부생명, KDB생명, 현대라이프 등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있는 다른 생보사들로 향할 것으로 예상돼 업계가 긴장 중이다.

▶78%가 대법원 손에…

일부 생보업계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온 뒤에 지급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기존의 방침을 여전히 고수 중이다.

지난 5월 가입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에도 약관대로 재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로 나왔지만 청구권 소멸시효 2년이 지나버린 계약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 보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현재 14개 생보사 중 ING, 신한, 흥국, PCA 등 7개사가 자살보험금 지급을 결정했다. 반면 삼성, 교보, 한화 등 이른바 생보사 빅3 업체를 비롯해 알리안츠, 동부, KDB, 현대라이프 등 7개사는 지급 결정을 보류 중이다.

각 보험사가 금감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보험금 미지급금은 지난 2월 기준 2,500억 원에 육박한다. 이중 소멸시효 2년이 지난 보험금이 2,300억 원(78%)으로 전체 미지급금 중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금감원의 전방위 압박에도 생보업체들이 소멸시효 지급 건에 대해 대법원의 판결까지 결정을 미루겠다고 버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계약자 권리 및 주주 이익 침해 우려

지급 결정을 미루고 있는 한 생보사 관계자는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소멸시효가 지났음에도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쟁점이기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 보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최고법원인 대법원으로부터 법리적인 판단으로 받아보고 지급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역시 보험이 갖고 있는 상부상조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전했다.

이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 이전에 지급여부를 결정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급을 결정한 뒤 만약 소멸시효가 지난 건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다른 계약자 권리 침해 혹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배임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대법원에서 민사상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행정적 측면과 사법적 측면은 별개라며 보험사가 당초 약속한 보험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금융당국과 생보사간에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둘러싼 충돌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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