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칼럼] 누구나 알고 아무나 하는 인문학 <12>

1. 인간 - 자연이 집필하고 진화가 편집

우리 인류는 300만 년 전 유인원에서 갈라져 진화를 거듭하다 15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로 진화했습니다. 자연이 생명현상이라는 한 편의 드라마를 쓰는 동안 진화는 이 드라마를 지속적으로 편집해 호모사피엔스 즉,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물 종(種)들은 진화의 편집 과정에서 남성·여성 혹은 암컷과 수컷으로 성이 구별됐습니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서로의 DNA를 반반씩 교환하는 유성생식 방식이 자연에 적응해 생존, 번식하는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유성생식은 상대편 유전자의 절반을 받기 때문에 DNA 결합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생길 가능성이 높고 이 돌연변이가 진화를 촉진하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쉬웠습니다.

자연에서 이뤄지는 이러한 수컷과 암컷의 결합을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주위에서 보는 모든 남녀 간의 연애,밀당, 중매, 결혼 등은 모두 성선택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진화가 편집한 두 가지 성(性)의 어느 하나에 편입돼 지금도 여전히 성(性)선택에 몰두합니다. 왜 이렇게 성선택에 몰두할까요?

 

2. 성(性)선택을 위해 경쟁하는 인간

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면 진화가 종(種)과 종(種)사이의 경쟁이라고 오해합니다. 진화는 종과 종사이의 경쟁이 아닙니다. 진화는 종(種) 내부 개체 간의 경쟁으로서 이 경쟁은 마지막 개체가 멸종하는 순간까지 계속됩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톰슨가젤과 치타가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것으로 보이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톰슨가젤과 치타의 경쟁이 아닙니다. 진화론적 경쟁은 톰슨가젤은 톰슨가젤끼리, 치타는 치타끼리 경쟁합니다. 그래서 톰슨가젤은 치타보다 더 빨리 달리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톰슨가젤은 동료 톰슨가젤보다 빨리 달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톰슨가젤은 치타보다 빠르지 않아도 다른 톰슨가젤보다만 빠르면 치타에 잡아먹히지 않고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화경쟁은 본질적으로 종(種) 안에서 개체 간의 경쟁인 것입니다.

*진화가 종(種) 안에서 개체끼리 이뤄지는 경쟁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는 이솝우화 급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친구 둘이 등산을 갔는데 산속에서 곰을 만났습니다. 곰을 피해 도망가던 한 친구가 갑자기 멈추더니 신발끈을 동여 멨습니다. 가까스로 곰을 따돌린 후 두 친구가 대화를 합니다. 한 친구가 “도망가다 갑자기 신발끈은 왜 다시 메? 아무리 그래봤자 곰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다고.” 그러자 다른 친구가 대답합니다. “너 보다는 빨리 달릴 수 있어.”

인간이라는 종(種)도 본질적으로 인간끼리 경쟁합니다. 인간의 가장 큰 경쟁자는 인간입니다. 실제로 냉전시대 인류는 핵무기 경쟁으로 멸망 일보 직전까지 갔으니까요.

인간의 경쟁에서 가장 원초적인 경쟁은 무엇일까요? 유전적으로 우수한 상대의 성을 쟁취하기 위한 성(性)선택 경쟁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DNA가 유전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외모를 어필해 우수한 DNA를 보유한 상대 성(性)의 선택을 받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합니다. 이것이 전략적 성(性)선택 행위입니다.

이를 위해 인류는 자신의 외모를 변화시켰습니다. 외모 변화를 통한 전략적 성(性)선택의 좋은 예가 있습니다. 인간의 몸에서 털이 왜 없어졌는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론이 그것입니다.

레딩 대학의 마크 파겔 교수와 옥스포드 대학의 월터 볼드머 교수는 "탈모는 인간들이 기생생물에 대한 감염 가능성이 낮아졌음을 효과적으로 '광고'하도록 해줬다. 그런 까닭에 이런 특징은 배우자를 맞는데 있어 매력적인 조건이 됐으며, 여성들은 털이 없으면 없을수록 남성으로부터 성적으로 더 강력한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인간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건강을 어필하기 위해 몸에서 털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이 진화에 성공한 인간이 살아남아 결국 인간의 몸에서 털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는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성(性)선택을 위해 인간의 몸이 부단히 변화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인간 몸의 다른 부분은 어떨까요. 우선 얼굴은 남녀 모두 대칭적인 황금비율이 선호됐고 이목구비가 대칭을 이룰수록 호감을 받습니다. 몸매는 여성의 경우 볼륨감 있는 가슴과 엉덩이가 상대의 시선을 강하게 끌었으며 가는 허리와 하이톤의 목소리가 선택받았습니다. 남성은 넓은 어깨와 굵은 허벅지, 중저음의 목소리가 어필했습니다.

인류의 남성과 여성이 이런 특성을 갖기 까지 10만 년 이상 걸렸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류는 성(性)선택을 위해 10만 년을 기다려 몸을 변화시킬 여유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현생 인류에게는 과학과 문명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3. 진화 대신 과학이 편집하는 인간

이제 인류의 남성과 여성은 기나긴 시간이 소요되는 진화의 편집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과학과 문명이라는 새로운 편집기술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과학적 색채 기법으로 얼굴을 황금비율인 양 속이고 성형 의학으로 황금비율을 직접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가슴과 엉덩이 정도는 간단히 기능성 속옷으로 대체합니다. 필요하면 지방을 넣거나 빼서 조작합니다.

얼굴이나 몸을 조각하는 것이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면 패션디자이너의 힘을 빌어 옷으로 치장하면 됩니다. 패션 디자이너는 이미 미니스커트를 발명해 인류의 성선택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바 있고 지금도 여전히 상대편 성(性)의 선택을 받기 위한 갖가지 위장, 기만, 과시, 허세 등의 전략을 구사하는 디자인을 창조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단순한 인체공학이나 예술적 기교를 넘어 현대과학이 밝혀낸 갖가지 생물학, 심리학, 인지학, 뇌과학, 인체공학 등의 성취를 활용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性)선택 전략에 현대과학의 이론이 총동원됩니다.

생물학적으로 인류는 더 이상 진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존재합니다. 진화의 본질은 ‘자연선택과 돌연변이’인데, 인류는 자연자체를 변화시키므로 자연의 선택을 받을 필요가 없고, 자연의 선택을 받을 필요가 없으므로 돌연변이를 통해 몸의 변화를 일으킬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외모를 편집해 줄 진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인류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유성생식을 하는 한 성선택 전략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인간의 외모 경쟁은 지속된다는 말입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전략적인 성선택 활동을 통해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상대를 쟁취해야 한다면 당연히 과학과 문명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리합니다.

배우자를 찾아 나선 남성 혹은 여성 여러분. 과학과 문명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15만 년 동안 진화한 호모사피엔스는 본능적으로 경쟁력 있는 DNA 보유자를 구별해냅니다. 호모사피엔스가 구사하는 전략 중 가장 기초적이고 확실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깨끗한 피부의 반듯한 얼굴과 날렵하고 균형잡힌 몸매의 선택입니다.

과학이 말합니다. 과식하지 말고 나쁜 음식의 섭취를 줄이며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면 상대편 호모사피엔스를 홀릴 수 있다고. 이것만 실천해도 깨끗한 피부와 반듯한 이목구비를 갖추는데 큰 도움을 받습니다.이목구비가 반듯하지 않으면 약간의 과학적 도움을 받으십시오. 치아교정, 쌍꺼풀 수술, 코 수술 등 경제적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과학의 도움을 받기를 권장합니다.

패션 과학이 창조한 자신의 옷을 입으십시오. 비싼 명품이 아니라도 자신의 단점은 감추고 장점은 부각해주는 옷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옷 대신 몸이 바뀌려면 또다시 10만 년이 필요하니까요. 다만 호모사피엔스는 일반 동물과 달라 몸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문명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매력적인 얼굴과 몸에다 풍부한 지식으로 무장한 두뇌와 재산도 있어야 상대의 성에게 어필합니다.

이것을 다 갖추게 해주는 비법이 있다면 믿겠습니까? 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인문학 공부는 인간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은 인간의 미의식을 다루고 인간의 몸을 다루고 인간의 심리를 다루고 현대과학의 성취에 대해 공부합니다. 인문학에 정통하면 자신의 몸과 얼굴을 잘 가꿔 상대방에게 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고 풍부한 지식으로 매력을 발산할 수 있으며 그 지식으로 자기 분야의 경쟁력을 높여 능력자가 됩니다.

인문학을 고리타분한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문학은 남성과 여성의 성선택 전략을 훌륭히 수행해 줄 최첨단 무기입니다.

인문학을 통해 상대방의 성에 어필하는 몸을 만들고 상대를 지적으로 감동시키는 지식을 쌓으십시오. 인문학적 지성으로 무장해 돈을 버십시오. 자연과 진화가 길게는 46억 년 짧게는 15만 년 동안 편집해낸 여러분의 몸과 머리를 인문학 공부는 불과 10여 년이면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줄 것입니다. 매력적인 배우자를 원하십니까. 인문학을 공부하십시오.

 

※저자 윤성호

인문학 대중화를 통해 사회공헌을 추구하는 인문학 글쓰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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