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부동산, 최선의 전략⑩

[컨슈머치 = 김현우 기자] 세입자들 사이에서 ‘고의 경매'가 논란이다.

최근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갭투자’로 다수의 주택을 보유한 일부 임대인들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의로 주택을 경매에 넘기면서 피해를 보는 세입자가 생겨나면서부터다.

보증금을 맡기고 주택을 임대해 살고 있는 세입자들은 살고 있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피 같은 보증금을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 갭투자자 주택 거주 세입자, “고의 경매 주의보”

경기 성남에 위치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는 A씨는 최근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들었다.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알아본 결과 A씨가 입주할 당시 2억7,000만 원이던 전셋값이 최근 집값 하락 등을 원인으로 2억3,000만 원까지 떨어졌는데, 3억 원이던 매매가 역시 2억6,000만 원 선까지 내려갔다.

갭 투자자인 집주인 B씨가 아파트를 제 값에 팔아도 보증금으로 1,000만 원의 손실을 봐야하는 상황이 닥치자 집을 경매에 넘겨버린 것이다. B씨는 지인들 및 가족들에 형식적인 돈거래를 한 뒤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택을 경매에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A씨의 보증금보다도 떨어진 집값. 시장에서 2억6,000만 원인 집을 전셋값을 껴안으면서 2억7,000만 원에 낙찰 받을 사람은 없다. 결국 A씨는 1,000만 원의 웃돈을 얹어 자신의 집을 낙찰 받았다.

갭투자는 세입자의 전세보증금과 자기자본금 일부를 포함해 주택을 구입하는 방식의 투자 방법이다.

예컨대 매매가 2억 원짜리 주택의 전세가율이 80%라면, 1억6,000만 원의 전세세입자를 끼고 4,000만 원의 금액만 투자해 주택을 매입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갭은 4,000만 원이 되는데, 갭이 작아질수록 투자자는 적은 액수로 부담없이 많은 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

갭투자자는 2년마다 새롭게 전세 계약을 하면서 보증금을 올려 이익을 남기고, 최종적으로 매매가 상승을 통한 시세차익도 노린다. 

갭투자 주택의 특징은 거래 당시 전세가율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아파트 전세가율은 30~40% 수준으로 갭투자를 할 만큼의 종잣돈을 만들 수 없었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대출규제의 완화가 이뤄지고, 전세가율이 70~80%까지 폭등하자 전세보증금을 끼고 아파트 대량 매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갭투자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갭투자가 높은 전세가율을 통해 얻은 전세보증금을 기초로 한다는 것.

매입금액 대부분을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으로 충당하다보니 갭투자자들 대부분 현금유동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만약 역세권 등 입지가 좋은 곳에 있는 집이거나, 입주물량 폭탄이 터지지 않은 경우 보증금을 약간 낮추는 것으로 다음 세입자를 바로 구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미입주로 인한 리스크를 집주인이 짊어져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 사례는 오히려 세입자가 피해를 입었다. 이는 집주인이 고의로 경매를 걸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8년 3월,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동탄신도시에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한 사람 명의로 59채의 주택이 한꺼번에 경매에 나온 것이다.

사태의 주원인은 동탄신도시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서 발생한 일이다. 입주 물량이 쏟아져 전셋값과 매매가가 하락하자, 갭투자를 통해 무리하게 집을 매입한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갑작스런 전세물량 증가에 세입자를 찾을 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결국 하락 이전의 전세금만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고의로 경매를 걸어 세입자들에게 집을 떠넘기려 한 것이다. 고의경매를 통해 일괄 정리하려 했던 이 갭 투자자는 경기와 충청권을 통틀어 300채 가량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이 법원은 무잉여를 이유로 경매를 중단했다.

동탄신도시 전경(출처=경기도멀티미디어)
동탄신도시 전경(출처=경기도멀티미디어)

■ 당장 예방할 방법 없어…"정부가 나서서 임차인 보호 대책 마련해야"

문제는 이러한 갭투자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데 있다.

사실 업계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갭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긴 했다. 다만 대부분 갭투자로 인한 부동산 시장 과열양상에 대한 우려였다. 갭투자로 인한 임차인 피해가 논란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이 비교적 최근이기 때문에 전문가들 역시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갭투자를 막는 방향으로 부동산 정책의 가닥을 잡았다. 이를 위해 8·2부동산 종합대책과 양도소득세 중과 조처 등을 통해 갭투자의 활성화를 막고 실수요자 중심의 가격 안정을 꾀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갭투자로 발생할 피해를 세입자가 받지 않도록 막아줄 정책은 뚜렷하게 나온 게 없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전문위원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은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방향은 기본적인 임대차 현황을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이를 기준으로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을 위한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소송까지 가지 않도록 문제가 생겼을 때 직접적인 행정조처를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한 기초조차 아직 구축이 안 돼 있는데, 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스템의 힘이 생겨야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임대차계약은 임차인 입장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있기 때문에 최소한 임대인의 경제상황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뒤 계약이 이뤄지게 하거나, 이게 어렵다면 최소한 현재 임의규정인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등의 임차인 보호 방안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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