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치 = 김은주 기자] "12월까지 긍정적인 변화나 개혁 의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구조적 처방'에 나설 수밖에 없다"

‘재벌 저격수’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자발적 개혁안 제출 시한으로 제시한 1차 데드라인이 임박하면서 재계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태광그룹이 지배구조 개혁 작업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총수 소유 계열사 7→1개로 축소...1천억 원대 지분 무상증여

그 동안 업계 내 안팎으로 끊임없이 지적받았던 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태광그룹이 총수 일가가 보유한 계열사를 7개에서 1개로 축소하고 전반적인 경영 투명성 제고에 나선다.

태광그룹은 지난 26일 한국도서보급과 티시스 투자부문, 쇼핑엔티 등 3개사 합병 계획을 공시했다.

티시스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 분할하고, 인적 분할된 티시스 투자부문은 한국도서보급, 쇼핑엔티 등과 합병한다.

합병 예정일은 내년 4월 1일이며, 합병 후 존속법인은 한국도서보급이다. 상품권 업체인 한국도서보급은 이호진 전 회장이 51%, 아들 이현준 씨가 49%의 지분을 각각 보유한 회사로 향후 지주회사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 전 회장은 티시스가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눠짐에 따라 보유하고 있던 1,000억 원 상당의 티시스(사업부문) 지분 전체를 무상으로 증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여방식 등은 내년 상반기 중 법적 검토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이호진 전 회장은 염색업체인 세광패션 지분을 태광산업에 매각했으며 올해 7월에는 와인 유통업체 메르벵 지분 전체를 태광관광개발에 무상증여했다. 10월에는 서한물산과 동림건설, 에스티임 등 3개사를 티시스로 흡수합병시켰다.

결국 이번 분할 및 합병을 통해 이 전 회장 일가가 소유한 회사는 한국도서보급, 메르뱅, 티시스, 세광패션, 에스티임, 동림건설, 서한물산 등 7개에서 한국도서보급 1개만 남게 된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무상 증여 등 후속조치가 완료되면 이 전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티시스 등 계열사를 둘러싼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등 논란이 모두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의 개혁 요구에 부응해 자발적으로 지배구조 개선과 일감 몰아주기 등 내부거래의 근원적 해결 등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향후 출자구조의 개혁에 그치지 않고 소액주주의 권리 보장, 윤리경영시스템의 강화 등을 지속 추진해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정착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감몰아주기의 대명사 ‘태광’...김상조 칼날에 환골탈태?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는 과정에서 이호진 전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지 벌써 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태광그룹은 총수 일가를 둘러싼 부당 거래 의혹이 끊임없이 회사에 발목을 잡는 실정이다.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이호진 전 태광 회장 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주고 그 피해가 직원들에게 미치고 있다는 비난과 지적이 지난 수년간 계속돼 왔던 것.

총수 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한 와인업체 메르뱅을 통해 태광그룹 협력업체를 상대로 와인 구매를 강요하고, 태광그룹 주요 금융 계열사 흥국생명 직원들의 성과급을 김치로 대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시민단체 '태광그룹 바로잡기 공동투쟁본부'는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이 전 회장이 소유한 회사의 김치·커피·와인 등을 사들이는 등 부당 내부거래를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각각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주 태광산업, 흥국생명 등 태광그룹 계열사의 부당 내부거래 혐의에 대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특히 태광 총수 일가 소유의 회사 중 티시스는 티브로드와 흥국생명 등 주요 계열사에 IT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업체로써 꾸준히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 중심에 있는 업체다. 연간 매출의 70% 가량인 약 2,400억 원을 그룹 계열사를 통해 벌어들이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오너 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보유한 비상장사의 경우 내부거래가 연 200억 원 이상이거나 연 매출의 12%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된다. 이에 따라 티시스 역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태광그룹의 일감몰아주기 등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며 “공정거래법으로 얼마나 규제할 수 있나 검토하고 철저하게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김상조 위원장의 지배구조 개혁 칼날이 점차 가까워지자 태광그룹은 계열사 3곳을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단순화 작업에 나선 것인데 이를 통해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털어내는 것뿐 아니라 지주사 전환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금융계열사 지분 정리 문제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하다. 태광그룹은 한국도서보급이 보유한 흥국생명과 흥국증권의 지분 처리 문제에 대해선 아직 검토하고 있는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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