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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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치 = 송수연 기자] “안 쓰고, 안 사는 거야 어렵지 않죠. 진짜 너무 쉬움! 무조건 성공기가 될 거 같네요”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관련된 기획기사를 준비하던 한 동료 기자가 체험기 하나를 작성해 달라고 했다. 일본 제품에 대한 소비도 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일본 제품이 있다면 한주, 아니 단 하루라도 좋다면서 말이다.

내심 ‘한 주가 무엇이냐, 한 달이라도 살겠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이슈와 관계없이 개인적으로는 방사능 때문에라도 평소 일본 제품 구매나 여행을 꺼려했기에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에 일주일 씩이나 일본 제품 없이 살기를 도전하는 것은 지루한 일상의 연속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 단 하루만 도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단 하루도 쉽지 않았다.

■ 위기는 도전 전날에 찾아왔다

체험기를 쓰기로 한 바로 다음 날 실행에 옮기겠다고 말했다.

퇴근 후 내일 있을 체험기에 대한 준비를 했다. 사실 준비랄 것도 없지만, 혹시나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일본 브랜드는 없는지 점검했다.

소파에 앉아 뭐가 있나 생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아 일단 손을 닦으려 화장실에 들어가 비누를 집었다. 씻으면서 생각해보니 일제 비누다.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이 비누는 지난 대만여행 때 면세로 구입한 것이다.

제대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가 왔다.

거실 한켠에 버젓이 서 있던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선풍기.
거실 한켠에 버젓이 서 있던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선풍기.

다시 소파에 앉아 또 다른 일본 브랜드 제품은 없는지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퍼뜩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더는 없나 생각하던 찰나 내 눈 앞에 선풍기가 일본 제품이다. 신혼집 꾸미며 심사숙고해서 고른 플러스마이너스제로의 초록 선풍기.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그나마 공기청정기를 사려고 고민할 때 발뮤다(일본 브랜드)로 할까 하다가 다이슨으로 결정한 것은 결국 좋은 선택이었다고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보니 내일 당장 선풍기를 쓸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막막해졌다. 

동아오츠카의 '두번째 우린 녹차만 담았다', 바로 옆에 대체제를 할 하늘보리가 있다.
동아오츠카의 '두번째 우려낸 녹차만 담았다', 바로 옆에 대체제를 할 하늘보리가 있다.

하필이면 생활필수품인 비누와 여름철 가전인 선풍기라니 조금 좌절스러웠지만 대체품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여기서 또 한 번 흠칫한다. 최근에 한 박스를 사둔 동아오츠카의 녹차음료가 눈에 띄었다. 동아오츠카 음료는 포카리스웨트도 잘 안마시는데 최근에 아무런 이유없이 동아오츠카 녹차음료를 한 박스나 샀다. 물론 동아오츠카 제품인 것도 몰랐다.

10분 만에 벌써 일본 제품을 세개나 찾았다. 없으면 어쩌지하던 걱정은 왜 했는지 자책하며 바로 몇 시간 전 이번 체험기에 자만했던 내 모습이 스스로 한심했다.

'삐비빅-' 남편이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남편을 반겨주고 바라보는데 왜 안경도 일본제인지… 심지어 본인이 추천해서 산 안경이었다.

남편이 제공한 금자안경 케이스.
남편이 제공한 금자안경 케이스.

■출근 준비부터 어렵다

‘일본 제품 없이 살아보기’를 본격 시작하는 아침이다. 

일본 비누 대신 메소드 핸드워시를 사용했다.
일본 비누 대신 메소드 핸드워시를 사용했다.
화장실 수납 공간에서 찾은 일본 제품들. 아직 비누도 많이 남았다.
화장실 수납 공간에서 찾은 일본 제품들. 아직 비누도 많이 남았다.

어제 저녁 집에서 사용 중이던 비누가 일본 브랜드라는 것을 미리 알아챘기에 비누 사용은 하지 않았다. 손은 LG생활건강의 핸드워시 ‘메소드’를 이용했다. 그 외 세안제와 칫솔, 치약은 일본과는 무관한 제품으로 평소대로 사용했다.

세안으로 빠져나간 유·수분을 채우기 위해 스킨, 로션을 발랐다. 스킨과 로션, 그 외 스킨케어 제품 모두 일본 브랜드가 아니었다. 내심 뿌듯했다.

또렷한 눈매를 만들 차례다. 아이섀도를 바르고 뷰러를 사용해 속눈썹을 말아 올렸다. 아파 보이는 입술 위에도 색을 올렸다.

화장을 끝내고 옷장을 열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다 입었는데 오늘 신으려고 꺼낸 양말이 유니클로다.

‘젠장’

바쁘지만 양말을 갈아신으면 대충 사진도 찍었다.
바쁘지만 양말을 갈아신으면서 대충 사진도 찍었다.

늘 출근시간은 빠듯한데 다시 옷장 서랍을 열고 유니클로가 아닌 양말을 찾아 신는다.

이렇게까지 양심적으로 체험기를 작성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체험기 쓸 생각에 정말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너무 늦지 않게 출근길에 나섰다.

■ 출근 중 깨달은 것들

나는 출근길부터 이번 체험기는 ‘실패기가 되겠구나’를 직감했다. 아까운 시간 쪼개가며 유니클로 양말까지 피한 것은 좋았는데 에어리즘은 어째서 피하지 못했을까.

시간에 쫓기다 보니 버릇처럼 입은 것 같은데 차라리 체험기가 끝날 때까지 몰랐으면 좋았겠다는 마음뿐이다.

허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완전한 성공을 기대했는데 지나치게 빠르게 실패를 맛봤다.

멍하니 몇 정거장을 더 가다가 일본 브랜드를 검색해 봤다.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 찾아 본 결과 불행 중에 불행인지, 불행 중에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출근 전부터 이미 도전 실패였다.

그러니 방금 알아차린 에어리즘에 너무 속상해 할 필요는 없었다.

거의 매일 아침 쓰는 루나솔 아이섀도와 시세이도 뷰러.
거의 매일 아침 쓰는 루나솔 아이섀도와 시세이도 뷰러.

오늘 습관처럼 보지도 않고 열어 눈꺼풀에 바른 아이섀도는 ‘루나솔’ 제품으로 일본 브랜드다. 뷰러 역시 일본 브랜드 ‘시세이도’였다.

매일 일어나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일들이라 놓친 게 틀림없다. 

출근 전까지 일어난 일들을 없던 일로 할 수 없으니 출근 후부터는 잘해보자고 혼자만의 파이팅을 외쳤다. 절반의 성공이라도 하자는 심산이었다.

■ 아니, 너 마저...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와 내 자리에 앉았다.

어제 퇴근 후처럼 나는 내 자리를 점검했다. 없겠지만 혹시나 모를 일본 제품을 거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펜조차도 모나미고 쓰는 노트북이나 마우스 이어폰, 안경, 졸음 쫓는 간식까지 모두 일본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오전과 오후를 별 탈 없이 보냈다. 점심도 한식으로 해결했고 편의점에서 사먹은 간식도 순수 국내 브랜드였다. 

그런데 3시쯤 문제가 생겼다.

습해진 날씨에 유분으로 얼룩진 얼굴을 오일 컨트롤 필름(이른바 기름종이)으로 닦아 내고 쓰레기통으로 향하는데 기분이 요상했다.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쓰레기를 처분하고 자리에 앉아 제품 뒷면을 살폈다. ‘Made in Japan’. 존슨앤존슨의 클린앤클리어 제품인데 이게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상당히 불쾌했다. 습관적 루틴에 또 당했다. 한 번쯤 확인할 수도 있었는데.

습관에서 오는 실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기자가 자주 쓰는 일상적인 아이템이 문제였다. 예상과 달리 소지한 일본산 제품이 많았다. 

이를 깨닫고 어제 오만방자하게 일본 제품 잘 안 쓰고 안 산다는 말에 대해 반성하며 어디 가서 다시는 그런 말은 한톨도 내뱉지 않기로 다짐했다.

■ 퇴근 후 고군분투 그리고 또 좌절

퇴근시간이다.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사실상 ‘일본 제품 안쓰기’ 체험에 대한 의지가 많이 꺾였다.

‘안 쓰려고 하면 정말 안 쓸 수 있는데 아깝다’라고 10번은 생각한 거 같다.

일본제품 소비는 없어 절반이라도 성공했다고 생각해보려 했지만 하루 안한 것 가지고는 (그것도 평일에) 의미 없었다. 사실 일본제품 없이 하루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기는 하다.

집으로 돌아와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선풍기의 플러그를 뽑았다. 더 이상의 실수는 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 전에 일제 비누는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치웠다.

들고 들어간 속옷에도 신경을 썼다. 굳이 유니클로 에어리즘은 피했다.

잠옷으로 갈아 입을 때도 유니클로는 피했다.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잠옷이 유니클로인지라 평소 잘 입지도 않는 원피스 잠옷을 어색하게 걸쳤다.

선풍기가 그리웠다.
선풍기가 그리웠다.

 

무인양품의 탁상용 스탠드와 닌텐도 위.
무인양품의 탁상용 스탠드와 닌텐도 위.

더위는 에어컨과 다이슨을 번갈아가며 날렸고 재미를 위해 사둔 닌텐도 위도 오늘은 쉬기로 한다.

시간을 보내다보니 취침할 시간이 됐다.

마음만 앞섰던 하루가 그렇게 흘려보내며 괜히 서랍이란 서랍은 열어 집 안을 꼼꼼하게 살폈다.

도전 전에 보이지 않았던 일본 제품들이 많이 보인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집에 쌓인 물건들이 꽤 많은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 놀랐다.

무거운 다이슨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자리에 눕기 전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갔다. 손을 닦는데 이럴수가 또 무심결에 비누를 집어 들어버렸다.

정말 쉽지 않다.

■ 내친김에 찾아 본 일본 제품들

다음 날 아침, 체험은 끝났지만 ‘루나솔’ 아이섀도와 ‘시세이도’ 뷰러는 사용하지 않은 채 출근 준비를 해보았다. 동아오츠카 녹차음료를 마셔도 됐지만 굳이 하늘보리를 한 모금 마시고 가방에 챙겼다. 

어제 체험에서 온 실패를 만회하고 싶어서였던거 같다. 쉽게 느껴졌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와 어제 뒤적거렸던 일본 제품들이 있는 서랍들을 열어 봤다.

옷은 꺼낼 엄두가 안 났다. 일단 유니클로가 너무 많다. 잠옷부터 양말, 속옷, 내의, 반바지 등 나열할 수가 없다. 나뿐 아니라 남편도 에어리즘부터 히트텍, 속옷할 것 없이 많은 의류가 유니클로였다. 남편이 회사에서 받은 데상트 조끼부터 큰 마음 먹고 샀던 꼼데가르송 니트도 생각이 났다. 

UCC 드립커피와 무인양품 버터 나이프.
UCC 드립커피와 무인양품 버터 나이프.
무인양품 CD플레이어, 휴족시간.
무인양품 CD플레이어, 휴족시간.

잊고 있었는데 식기류도 무인양품 제품이 있었다. 베란다 청소용 빗자루와 침실 한 쪽의 CD플레이어도 무인양품이었다. 다리 피로를 풀기 위한 파스(그 유명한 휴족시간), 아침을 깨우는 커피도 일제였다.

어디 그뿐이랴, 프랑프랑에서 샀던 저금통, 다람쥐 인형도 눈에 보이고 시집갈 때 엄마가 챙겨줬던 접시들도 찾아보니 일제다.

냉장고에도 여행용 사케팩이 있었고 와사비 제품도 일본 브랜드였다. 더 찾으려면 찾겠지만 여기서 중단했다.

냉장고 속 사케와 고추냉이.
냉장고 속 사케와 고추냉이.
프랑프랑에서 산 저금통과 다람쥐 소품들.
프랑프랑에서 산 저금통과 다람쥐 소품들.
기자가 평소 자주 드는 포터 가방.
기자가 평소 자주 드는 포터 가방.

그동안은 무엇인가를 사려고 고민할 때 선택 기준은 물건만 좋으면 됐다. 디자인이나 성능만 좋으면 굳이 고민 없이 구매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 같은 시기에 집이 지뢰밭이 됐다.

무엇인가를 소비할 때 각자의 선택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체험기는 나에게 또 다른 선택 기준 하나를 제시해 준 소중한 경험이 됐다. 

그리고 매일을 일본 브랜드와 함께 했음을 인정하게 됐다. 

기자 개인생활 깊숙이 들어온 일본 브랜드 제품은 기자의 일상과 다름 없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결코 일본 제품에 대한 소비는 많이 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조금씩 사다 모은 것들이 집안을 점령했다.

당장 이번 불매운동 때문이 아니라도 앞으로 어떤 소비를 할 것인지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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