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⑥

[컨슈머치 = 김은주 김현우 전향미 기자] 지난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궐련형 전자담배(이하 ‘전자담배’)가 일반담배와 마찬가지로 유해하다는 식의 발표를 하면서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전자담배 업체들이 국내에 잇따라 신제품을 내놓으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던 중 만난 뜻밖의 대형 악재였다.

시장 점유율 1위 필립모리스는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 소송까지 제기하며 나날이 강도 높은 대응을 펼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필립모리스의 행보가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기업이 정부와 전면전까지 불사하는 일은 흔치 않다. 정부와 각을 세워봤자 ‘계란으로 바위치기’ 일뿐, 오히려 윗분(?)들의 심기를 건드려 결과적으로 손해로 돌아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필립모리스 측은 표면적으로 “식약처의 정보를 법률에 따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혼란과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말하지만 다른 경쟁업체와 비교해 지나치게 저돌적인 그들의 모습은 다소 의아함을 자아내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무엇이 필립모리스를 이토록 발끈하도록 만든 것일까.

(출처=구글 이미지)
(출처=구글 이미지)

■‘덜 해로운 담배’ 거짓인가?

담배계 ‘아이폰’이라 불리는 필립모리스의 아이코스가 국내에 상륙한 게 작년 6월, 모두의 예상대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담배면 다 똑같은 담배 아니야?’라는 물음표에 필립모리스는 당당히 궐련형 전자담배가 흡연자 건강에 미치는 유해성분들의 수치를 현저히 낮추기 위해 고안된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한 마케팅을 펼쳤고, 이는 대중에게 제대로 먹혀들었다.

일반담배에 비해 냄새가 덜하고 연기가 나지 않는 데다 건강에도 ‘그나마’ 덜 나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심리는 수많은 흡연자들을 아이코스 매장 앞에 줄 서게 만들었다.

이 와중에 식약처가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만큼 유해하다고 발표했으니 소비자들은 ‘속았다’는 기분이 들기에 충분했다.

아이코스의 ‘덜 해로운 담배’ 콘셉트가 깨지면서 신뢰에 타격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자칫 과장광고, 허위광고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필립모리스 입장에서는 초대형 폭탄이 떨어진 격이다.

■금연 캠페인까지 펼치는 ‘속내’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으로 자칫 회사가 지향하는 청사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말보로를 통해 명실상부 세계 최고 위치에 있는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는 지난 10년간 연구개발(R&D)에 5조 원 이상 투자하고, 2017년 ‘담배연기 없는 미래’를 비전으로 선포할 만큼 일반 연초 담배에서 이후의 미래를 준비해 왔다.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의 CEO인 안드레 칼란조풀로스는 지난 2016년 11월 영국 BBC방송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언젠가 일반 담배 판매를 중단하게 될 날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언젠가 대체품들이 충분히 도입돼 각국 정부와 함께 기존 담배에 대한 판매를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본다”며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필립모리스는 담배회사임에도 ‘금연 캠페인’을 벌이는 모순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전통적인 일반 담배를 끊도록 돕는다는 명분 하에 대체인 전자담배가 덜 해롭다는 것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일환이다.

연기가 없고 덜 해로운 혁신적인 담배를 통해, 주력 제품인 일반담배 생산을 과감히 접겠다는 전략 하에 탄생한 제품이 바로 아이코스다. 아이코스에 회사의 명운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다.

그런 아이코스가 일반담배와 별 차이 없이 유해하다는 식약처 발표가 나왔으니 필립모리스 입장에서 몇십 년을 공들인 탑이 무너지는 소리로 들렸을지 모른다.

자사 주력 상품을 교체 계획에 완벽히 제동이 걸린 것이다.

업계 관계자 A씨는 “건강에 덜 유해한 담배를 만들겠다는 게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탄생의 목적인데, 이를 부정 당한다면 필립모립스 입장에서는 큰 타격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이어 “특히 아이코스 흡연자들이 일반담배로 다시 회귀할 가능성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전자담배가 유해성이 덜하지 않다면 결국 거추장스럽고 비싼 담배로 전락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미국에서 못 파는 미국 담배

아이코스는 정작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는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서인데 이 점이 필립모리스를 극도로 예민하게 만드는 요소일 것으로 보인다.

국내로 치면 KT&G가 한국에서 릴(lil)을 팔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미국 시장은 필립모리스의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유해성 감소가 인정되지 않아 미국에서 판매하지 못하는 제품을 한국에서는 유해성이 덜 하다며 광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사례가 미국 FDA 승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필립모리스가 기를 쓰고 식약처를 이기려는 드는 이유라는 것.

업계 관계자 B씨는 “아이코스를 자국인 미국에서 못 팔고 있다는 것이 맹점”이라며 “미국 FDA는 현재 궐련형 전자담배의 최대 시장인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확률이 높다. 이 때문에 필립모리스가 식약처 발표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내 전자담배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규제 사각지대 속 청소년들의 전자담배 흡연이 급증하자 FDA는 이번 주부터 편의점과 주유소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 금지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궐련형 전자담배 승인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 C씨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공인된 분석법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유해성분 조사 결과 역시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그런데도 업체 측은 국내 유해성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자체 실험을 통한 실험 결과를 의도적으로 자주 공개하는 것 같다. 정작 미국에서는 판매 승인조차 못 받고 있음에도 미국 정부에 날을 세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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