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라차차 아빠육아⑫

[컨슈머치 = 김은주 김현우 전향미 기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아빠육아에 대해 취재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이 땅의 많은 아내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남편이 육아와 가사를 도와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돕다’의 사전적 정의는 ‘남이 하는 일이 잘되도록 거들거나 힘을 보태다’로 나와 있다. 친절하게 예문에는 ‘주말을 맞아 그는 집안일에 시달리는 아내를 도왔다’라는 글이 덧붙여졌다. ‘돕다’를 검색 해 본 많은 아내들의 분노를 유발할 수 있으니 수정되길 희망한다.

사전적 정의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돕다’는 철저히 제3자 입장에서 ‘남’의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집안일 혹은 육아는 한 사람의 몫이 아닌 부부간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도와준다는 표현은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다.

25개월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 안지원(여‧37세)씨 역시 ‘남편이 집안일 많이 도와줘?’라고 묻는 지인들의 구시대적 질문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길 누구보다 희망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출처=안지원 씨)
(출처=안지원 씨)

안 씨의 남편은 금융권에 종사 중이며, 지난해 8개월간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의 비중이 고작 10%에 불과한 시대에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을 터.

하지만 안 씨는 육아 참여에 있어 남성을 더 ‘특별 취급’을 하는 사회 풍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엄마의 육아는 당연하고 아빠의 육아는 대단한가요? 육아는 엄마의 몫이 아니에요. 아빠가 육아휴직을 내는 것이 대단한 일도 아니고요."

"우리사회의 인식이 ‘출산은 엄마가, 육아도 당연히 엄마가’라고 못 박혀 있는 게 안타까운 거죠. 사회 전반의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아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 돌보는 것에 조금 더 전념하는 동안 안 씨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차장으로 승진에 성공했다. 그렇다고 회사 일에 몰두해 집안일과 육아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니다. 가사는 정확히 반반씩 담당한다.

“육아휴직을 한 남편을 둔 아내의 일상이요? 남자들보다 훨씬 빡센 일상이죠. 퇴근 후 집에 와서 집안일도 하고 저녁밥도 차리고요." 

"주말에는 미안한 마음에 육아를 더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평일에 약속이나 회식이 생기면 미리 말해 양해를 구하고요. 보통 남자들은 안 그러잖아요.”

직장 상사와 동료들의 눈치를 이겨내고 육아휴직서를 던진 아빠들의 육아일기, 무용담은 많이 전해진다. 그런데 정작 아빠들의 육아를 지켜보는 엄마들의 감정과 생각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워킹맘 안지원 씨로부터 남편의 육아휴직 8개월간의 소회를 들어봤다.

이하 일문일답.

Q. 남편의 육아휴직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이유는 많았어요. 일단 주변에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가족이나 지인이 없었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모르는 사람한테 맡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저는 승진을 앞두고 있었고, 경력이나 연봉이 남편보다 많기 때문에 둘 중 누군가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면 남편이 하는 게 현실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죠.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오히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남편이 부럽게 느껴졌어요.

Q. 지인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을 테고, 부러워하는 시선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 직장 경력이 14년 정도 돼요, 저 정도 경력되는 직장 선배들은 "그래, 남편이 지금 내고 초등학교때는 엄마가 내는 게 좋아"라는 조언들을 해주셨고요.

전업주부인 지인들은 "너희 남편 대단해"라는 반응을 많이 보였어요. 남자가 돈을 벌어오면 대단한데, 남자가 육아를 해도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Q. 실제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있나요?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기 전에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보니 상상했던 것 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고 저보다는 남편이 더 행복한 결정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 마디로 '내가 고마워할 게 아니라 남편이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였구나'라고 느꼈죠.

직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아이랑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안일은 반반씩 하니까요. 남편은 아마 육아휴직을 또 내라고 하면 낼 것 같아요.

Q. 남편의 육아휴직으로 가정에 가장 많이 바뀐 점은요?

육아와 가사 관련해 예전에는 “내가 이거 했으니 너는 이거 해”라는 식이 많았는데, 이제는 저도 남편도 알아서 스스로 하게 되네요.

Q. 남편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젠가요.

모든 순간이 다 행복하죠, 거짓말 같지만 그래요. 힘들지만 행복해요.

Q. 가장 놀라웠던 순간, 신기했던 순간도 따로 있을까요.

아이가 ‘엄마’보다 ‘아빠’라는 단어를 먼저 말했을 때 너무 신기했어요. 또, 남편이 시키지도 않은 집안일을 했을 때 놀랐죠. 예를 들면 장난감 소독이라든지 아이 방 청소라든지, 척척 잘하더라고요.

이때 알았어요. 남자들이 선천적으로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해 봐서 못하는 것뿐이었다는 걸요.

육아를 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아이랑 놀아주고 안아주고 등등 힘을 쓸 일이 많다보니 여자보다는 오히려 남자들이 더 잘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육아가 엄마의 역할이라고 교육 받고 자랐잖아요? 그게 문제인거 같아요.

Q. 남편의 육아 능력을 점수로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100점입니다. 저보다 나아요.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는 제가 훨씬 잘했는데 역시 함께한 시간은 못 이기는 것 같아요. 이제는 남편이 훨씬 나아요.

Q.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편의 반응은 어땠어요?

묵묵히 해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다 처음해 보는 것이니 열심히 하더라고요.

Q. 남편이 육아휴직 이후에 아내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나요?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됐대요. 집안일이 정말 해도 티가 안 나고, 그렇다고 안하면 티가 나니까. 얼마나 치사한 일인지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Q. 남편이 둘째 때도 육아휴직을 한다고 한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당연히 내라고 하죠. 제가 먼저 이야기 꺼낼 것 같은데요. 다만, 둘째는 안 가질 것 같아요. 낳는 거야 낳을 수 있지만 키우는 게 더 힘든 세상이잖아요.

Q. 경제적인 이유로 남편의 육아휴직을 두려워하는 아내들에게 해주고 싶은 현실적 조언 있으신가요.

아빠들의 육아휴직이라는 주제가 참 멋져 보이고 대단해 보이고, 우리 남편도 당장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당연히 많겠죠.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는 건 무모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이상과 달라요. 남의 남편이 멋지게 육아휴직을 한다고 비교하기 전에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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