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해외 유명 인사들이 글루텐을 끊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글루텐 프리(Gluten Free)' 식품이 건강 관리법 중 하나로 주목받은 적이 있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가 글루텐을 제외한 식단으로 경기력이 향상됐다고 밝히면서 관심이 커졌고, 일부 할리우드 스타들도 글루텐 프리 식단으로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고 소개하면서 전 세계적인 다이어트 트렌드로 확산됐다.
국내에서도 한때 글루텐 프리 제품이 '살 빠지는 빵'으로 알려지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열풍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현재도 빵, 면류, 간식 등 다양한 글루텐 프리 제품이 '건강식', '다이어트' 등을 내세워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글루텐을 제거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건강상 이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글루텐 프리,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
글루텐은 밀, 보리, 호밀 등에 들어 있는 식물성 단백질로, 물과 섞이면 반죽에 탄성을 만들어 빵이나 면의 식감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글루텐 프리 식단이 처음 주목받은 것은 다이어트가 아니라 '셀리악병(Celiac disease)' 치료 목적에서였다.
셀리악병은 글루텐이 소장 점막을 공격해 염증과 영양 흡수 장애를 일으키는 자가면역질환으로, 글루텐을 끊으면 복부 팽만감, 만성 피로, 체중 변화 등 증상이 뚜렷하게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글루텐 프리가 필요한 사람은 셀리악병 환자, 밀 알레르기·글루텐 불내증이 있는 사람, 밀가루 섭취 후 두통·소화불량 등이 나타나는 사람들이다.
■한국인, 글루텐 끊을 이유 딱히 없어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은 서양인과 유전적 배경이 달라 셀리악병 발생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셀리악병은 HLA-DQ2 또는 HLA-DQ8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에게 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미국국립의학도서관(NLM) 산하 전자 학술 데이터베이스 '펍메드 센트럴(PMC)'에 수록된 연구에 따르면, 해당 유전자 보유율은 서유럽·중동·북아프리카에서 각각 20%(DQ2.5), 10%(DQ8) 수준인 반면, 동남아시아·중국에서는 각각 10%, 5% 수준에 그쳤다.
또 다른 PMC 논문에서는 셀리악병 환자의 99% 이상이 이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 해당 유전자형이 사실상 발병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아시아·태평양 지역 셀리악병 유병률을 종합한 메타분석 연구에서도 동아시아의 유병률은 0.05%로, 중동(0.59%)과 남아시아(0.87%)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글루텐프리인증(KGFC)을 운영하는 한국쌀가공식품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에서 보고된 셀리악병 사례는 1명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추산한 미국 내 셀리악병 환자 약 300만 명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이유없는 글루텐프리, 오히려 역효과 가능성
▲영향 불균형
식약처는 글루텐프리 식품이 일반 식품보다 단백질 함량은 낮고 당류·지방 함량은 높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실제로 지난해 국제학술지 '인간 영양을 위한 식물성 식품(Plant Foods for Human Nutrition)'에 실린 연구에서도 미국의 글루텐프리 제품은 일반 제품보다 비싸면서도 단백질·식이섬유는 적고 열량·당류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여러 비교 분석에서도 같은 경향이 반복 확인되는데, "글루텐만 뺀" 제품을 다이어트 식품으로 오인해 섭취할 경우 영양 균형이 오히려 나빠지고 체중 관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혈당 관리 불리
글루텐이 빠지면 반죽 내 전분 구조가 달라져 소화·흡수 속도가 오히려 빨라질 수 있다.
PMC에 실린 체계적 문헌고찰에 따르면 전분의 가수분해가 촉진되면서 글루텐프리 빵의 혈당지수(GI)를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조사에서는 글루텐프리 빵의 혈당지수가 90에 달해 밀가루 빵과 비슷한 수준의 '고혈당지수' 식품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불필요한 배제, 필수 영양소 결핍 위험
특별한 의학적 이유 없이 글루텐프리 식단을 이어가면 오히려 건강에 손해일 수 있다.
통밀·보리·호밀 등은 식이섬유, 엽산·비타민B군, 철분의 주요 공급원인데, 이를 무작정 배제하면 장 건강 저하와 미량영양소 결핍, 장내 미생물 균형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나온다.
[컨슈머치 = 전정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