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 전쟁 여파가 의료 현장까지 번지고 있다. 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 수급 불안으로 약국에서 제공되던 투약병이 품귀 현상을 겪고 있으며, 주사기와 수액세트, 약포지 등 의료용 소모품 전반에 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시럽약과 함께 제공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투약병은 가격 급등과 사재기가 겹치면서 공급이 특히 불안정해졌다.
일부 약국에서는 제공 수량을 줄이거나 아예 제공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무료로 받던 투약병이 이제는 ‘아껴 써야 하는 물품’이 되면서 소비자들의 불편도 커지고 있다.
■중동 전쟁 여파에 투약병 가격 급등
‘원유 값이 더 오르기 전에 미리 사둬야 하는 생필품’이라는 포스터가 온라인에 퍼지며 플라스틱 제품 사재기 움직임도 나타났다. '중동발 나프타 수급 불안', '원재료값 상승 가능성' 소식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를 키웠기 때문이다.
한 소비자는 투약병을 주문하려다 크게 오른 가격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중순만 해도 100개에 4000원 대였던 투약병이 최근 2만 원가량에 판매되고 있다”며 “나프타 수급 불안이 남일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가격표를 보니 현실이었다”고 전했다.
판매업체는 공지를 통해 “중동 지역 분쟁으로 인해 투약병 제작에 필요한 원자재 수급에 큰 차질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원가 급등과 물량 확보 어려움이 발생해 부득이하게 한시적으로 판매 가격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해당 업체의 판매가는 29일 기준 100개당 1만1900원 수준으로 다소 내려왔지만, 중동 전쟁 이전 가격과 비교하면 여전히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사재기 겹치며 공급난…약국도 “여분 제공 어려워”
투약병은 약국이 구입해 소비자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던 품목이다. 그러나 가격이 급등하면서 약국의 부담도 커졌고, 무료 제공 자체가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일부 약국에서는 여분 투약병을 제공하지 않거나, 최소 수량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 방침을 바꿨다.
지난 28일 대한약사회는 약포지와 투약병 사용 안내 및 협조 요청 포스터를 공지했다.
포스터에는 “원자재 수급 문제로 인해 약포지 및 투약병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사용을 일부 조정하고 있다”고 안내했다.
이어 “1회 복용량이 1~2정의 캡슐인 경우 약포지 없이 제공될 수 있으며, 투약병은 추가 제공이 어려운 상황인 만큼 가능하다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투약병을 활용해 달라”는 내용도 담겼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가수요를 방지하기 위해 과도한 주문을 자제하고, 여분 투약병 제공을 줄이는 등 의료 소모품 사용 절감을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싸진 투약병, 다시 사용해도 괜찮을까
이에 소비자들은 사용한 투약병을 재사용해도 문제가 없을지 궁금해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재사용은 위생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한약사회는 재사용이 가능한 품목에 한해서만 투약병 재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주사기 등 일회용 의료기기는 재활용이 불가능하지만, 약통이나 일부 투약병은 의약품 특성에 따라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가정에서 임의로 판단해 재사용하기보다는 약국에서 상담을 받은 뒤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의약품마다 특성과 보관 방법이 달라 재사용이 가능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약사회도 수급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현장에서도 점차 공급이 안정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위생 문제를 고려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실리콘 투약병처럼 세척 후 반복 사용이 가능한 대체 용기를 찾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29일 오전 10시 정은경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대응 민생복지반 제2차 관계부처 점검회의를 열었다.
복지부는 4월에 이어 5월에도 약포지·투약병(시럽병) 제조업체에 평시 수준의 원료를 우선 공급하고, 의료제품 매점매석 행위에 대한 특별단속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컨슈머치 = 전정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