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오후 3시, 전국 스타벅스 2160여 개 매장의 블라인드가 일제히 내려갔다. 1999년 이대 앞 1호점이 문을 연 이래 27년 만에, 한국 스타벅스 전 매장이 같은 시각 영업을 멈춘 첫날의 풍경이다.
직원들은 본사가 미리 보낸 대형 모니터 앞에 모여 앉았다. 화면에는 한 사학과 교수의 강의가 흘렀다. 헌법 제1조를 인용하며,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지난 5월 18일 이른바 '탱크데이' 논란은 전국민적 공분을 샀고, 비난의 수위가 심상치 않았다.
신세계그룹은 신속하게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기획 담당 임원을 경질했고, 정용진 회장은 서면 사과에 이어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고개를 숙였다.
약관 상 60%를 써야만 환불되던 선불카드를 2주간 조건 없이 전액 돌려줬고, 마케팅 검수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루치 매출을 포기하고 전 직원을 교육 앞에 앉혔다.
바람직한 사과에 꼭 필요한 재발방지책까지, 신세계그룹의 대응은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민첩했고, 가용한 카드는 모두 썼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삼켜지지 않는 알갱이가 있다.
기업의 시스템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무책임한 일탈, 그 파장을 가늠하지 못한 분별의 부재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신세계 자체 조사 결과, 문제의 마케팅은 네 단계 결재 라인을 거치는 동안 누구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통과됐다. 흔히 여기서 "시스템의 부실"로 넘어간다.
이번 사고는 담당자들이 5·18을 몰라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니다. 5·18의 의미를 폄훼해선 안 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기본적인 사회적 합의 수준이다. 그래서 오히려, 네 단계의 결재 라인이 점검해야 할 항목에 '탱크데이' 따위는 애초에 들어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무 당연해서, 의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검수 체계를 더 촘촘히 죄어서 잡아야 할 일인가. 한 사회와 한 기업에서 한 자리를 책임진 구성원으로서 이 일탈이 부를 파장이 얼마나 큰지, 일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것인지를, 회사가 나서서 일러 주어야 하는가.
이제 기업은 체크리스트를 두고, 역사·기념일·재난 같은 민감 요소를 미리 거르고, 실행 직전 법무·품질 부서의 최종 검토를 붙인다. 다음 사고를 막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회사의 결재선이 원래 그러라고 있는 것이었던가. 여러 단계의 승인은 복잡한 일을 여러 전문가가 함께 책임있게 굴리기 위한 장치였지, 다 큰 직원의 일탈을 잡아내는 그물이 아니었다.
여기서 소비자의 역할을 돌아보자. 소비자의 분노는 정당했다. 무신경한 상품과 기업에 등을 돌리고 책임을 묻는 것은 소비자의 마땅한 권리이자 힘이다.
문제는 그 힘을 무엇으로 겨누느냐다. 소비자가 기업에 묻고 따져야 할 것은 참회의 크기가 아니라 시정(是正)의 정확성이다.
시스템은 잘못된 카피 한 줄은 걸러낼 수 있다. 그러나 그 카피를 애초에 멈춰 세웠어야 할 한 사람의 분별까지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직원 하나하나의 역사관을 다시 빚어 놓으라는 요구는 이미 회사의 몫이 아니다.
속죄의 퍼포먼스를 용서의 입장권으로 삼는 일은 정작 책임졌어야 할 개인을 슬며시 면제해 주는 일이다.
그러니 "이만하면 됐으니 용서하자"로 그쳐서도, "더 엎드리라"고 몰아붙여서도 안 된다. 성숙한 소비자는 회사에 회사의 몫을 정확히 요구하고, 그 선에서 멈추는 것이 옳다.
그리고 남는 질문 하나를 나 자신에게 돌린다.
서로 분열하고 갈등하고 조롱하는 세태, 그 속에서 비뚤어지는 역사 인식. 이는 기업에 떠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소비자이기 이전에 시민인 나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몫이다.
[컨슈머치 = 고준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