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분조위, 신도리코-한국투자증권 1심 참고
10억 손실에 40억 배상…8개社 기준 만들어지나
랩·신탁 돌려막기 사태를 둘러싼 소송에서 쟁점인 '손해액 산정'이 한쪽으로 기우는 모양새다.
지난 6월 금융감독원이 채권형 랩 손실에 대해 증권사에 손해액의 60~70%를 배상하라고 결정하면서 참고 판례로 제시한 사건(2024가합103473)은 신도리코가 한국투자증권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판결은 손해액을 '원금 손실'이 아니라 '증권사가 제시한 목표수익률에 미달한 금액'으로 잡았다. 금감원이 이 계산법을 채택하면서, 같은 사유로 제재를 받은 나머지 8개 증권사도 같은 잣대를 마주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해 2월 금융위원회는 9개 증권사가 채권형 랩·신탁을 운용하면서 만기가 맞지 않는 장기 채권과 기업어음(CP)을 편입하고 이를 다른 고객 계좌에 장부가로 넘기는 방식(이른바 돌려막기)으로 손실을 이전했다며 과태료 289억7000만 원을 부과했다. 하나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SK증권, 교보증권, 유진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유안타증권이 대상이었고, 한국투자증권은 기관경고와 함께 과태료 44억9000만 원을 부과받았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지난해 12월 12일 신도리코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배상을 명했다. 원고와 피고 모두 불복해 항소했고, 사건은 서울고등법원 제16-2민사부(2026나200405)에 계류 중이다.
■손해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신도리코는 2022년 10월 한국투자증권에 외화자금 4400만 달러를 납입하고 1년 만기 특정금전신탁 2건에 가입했다. 제시된 목표수익률은 7.75%, 편입 대상은 A1등급 이상 CP와 AA등급 채권이었고 위험도는 '저위험'으로 기재됐다. 이듬해 10월 만기에 반환된 금액은 4325만2259달러로, 원금보다 약 10억 원이 모자랐다.
재판부는 한국투자증권이 민평금리(채권평가사 산출 평균금리)보다 비싼 값에 CP를 사들이고 만기가 맞지 않는 채권을 편입한 행위를 「자본시장법」상 선관주의·충실의무 위반으로 판단했다.
문제 삼은 것은 손실 자체가 아니라 그 매입이 회사의 '돌려막기'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판결문은 "증권회사인 피고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것으로서, 오로지 수익자인 원고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쟁점은 손해액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손해액은 원금 손실액인 10억488만 원을 초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애초에 원금 손실 위험이 있는 상품이었고, 그 이상을 물어내라는 것은 목표수익률을 보장해달라는 요구와 다름없다는 논리였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7.75%를 적용해 만기에 받았어야 할 4741만 달러에서 실제 상환액을 뺀 415만7740달러, 변론종결일 환율로 약 57억7000만 원을 손해액으로 봤다. 여기에 책임을 70%로 제한해 40억4141만 원이 산출됐다.
■"적정가격 특정 어렵다"…재량 산정 조항 적용
재판부가 목표수익률을 손해액 기준으로 삼은 논리는 '보장'이 아니라 '추산'에 가깝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위법행위가 없었을 때의 재산상태와 그 이후 재산상태의 차액으로 계산한다. 이 사건에서는 고가 매입과 만기 미스매칭 없이 적정가격에 매입했을 때의 신탁재산 가액을 구해야 하지만, 재판부는 그 값을 특정할 수 없다고 봤다.
판결문은 "CP·채권 거래는 장외에서 트레이더들 사이에 1대 1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며 그 적정가격에 변동폭이 클 수 있고, 가치평가 등에 의해 그 적정가격을 특정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점"을 들었다.
이에 재판부는 「민사소송법」 제202조의2를 적용했다. 손해 발생은 인정되나 액수 증명이 사안의 성질상 매우 어려운 경우 법원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을 손해액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7.75%는 그 기준점으로 쓰였다.
기준점을 7.75%로 잡은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신탁재산에 편입된 CP 발행사 가운데 부도가 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상품 본래의 위험이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둘째, 신도리코는 이전에도 이 회사 상품에서 제시된 수익률에 대체로 부합하는 수익을 받아왔다.
셋째, 재판부는 7.75%라는 숫자가 어디서 나온 것이냐를 되물었다. 의무를 지키며 운용해도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그것을 기준점으로 삼는 데 무리가 없다. 반대로 장부가 고가 매입과 만기 미스매칭 없이는 불가능한 수익률이었다면, 회사는 위법한 방법을 전제로 한 조건을 내걸고 상품을 판 셈이 된다. 어느 쪽이든 7.75%를 기준에서 밀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 관행이었다"는 항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판결문은 "관행에 기댄 것만으로는 장부가 거래를 고집함으로써 원고에게 손실을 입힌 것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책임 30% 감액…금융위 제재 경감도 사유에
다만 재판부는 배상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신도리코가 먼저 상품을 문의했고 다른 상품을 목표수익률이 낮다는 이유로 거절한 뒤 계약을 체결한 점, 당시 CP 거래 대부분이 장부가로 이뤄졌고 이를 방지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던 점 등이 참작됐다.
여기에는 2022년 하반기 채권시장 경색의 영향과 함께 "실제 이를 고려하여 금융위원회 역시 피고에 대해 제재 수위를 낮추기로 하였던 점"도 포함됐다.
■8개 증권사도 같은 잣대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6월 29일 채권형 랩 손실과 관련해 한 증권사에 손해액의 60%인 3억9000만 원과 70%인 12억6000만 원을 각각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금감원은 배상비율 산정 근거로 "법원이 목표수익률 미달액의 70%까지 증권사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례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감독당국이 이 판결을 근거로 삼은 만큼, 소송이나 분쟁조정에 나선 피해자들에게는 협상의 기준선이 생긴 셈이다.
신도리코 사건 항소심에서 양측이 다투는 금액은 원고 24억6717만 원, 피고 40억4141만 원으로 합치면 1심 청구액 전액인 65억858만 원이다. 1심에 앞서 조정 절차도 진행됐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항소심은 지난 1월 19일 접수돼 7월 9일 첫 변론기일을 마쳤고, 오는 27일 두 번째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다. 선고기일은 아직 지정되지 않았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소송과 관련해서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컨슈머치 = 전향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