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관련 담합 정황을 적발하고 과징금 부과 절차에 착수했다.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정보를 공유하며 경쟁을 제한했다는 판단이다.
법과 원칙의 잣대로 보면 당연한 사안이지만, 굉장히 묘수다.
은행 간 담합이라면 처벌 대상이지만, 담합으로 경쟁이 제한된 덕분에 대출 한도는 관리됐고, 가계대출 규모도 일정 수준에서 억제됐다. 이는 정부가 강조해온 가계부채 억제 방향과 맞닿아 있다.
위법 여부와 별개로, 결과만 보면 정책 목표와 충돌하지 않는다. 의도와 무관하게 민간에서 정책 효과가 먼저 나타난 셈이다.
더 들여다보면 국내 대형 은행은 오랫동안 정책 신호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은행들은 대출 대상과 한도, 총량과 금리 등 상당 부분을 행정부의 방향 설정에 따라 움직였다. 경쟁 전략보다 지침에 따른 조정에 가까운 구조다. 이미 한계가 정해진 환경에서 이들이 담합을 통해 얼마나 시장을 왜곡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담합으로 인한 피해자라면 대출을 받지 못한 차주들이다. 치솟는 집값에 올라타지 못해 배아파하는 이들이지만, 이들은 정부가 가장 경계해온 부분과 겹친다. 대출 증가 속도를 늦추고 한계 차주의 차입을 막는 것이 정책의 핵심 목표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불확실한 경제 여건 속에서도 은행만은 수조 원대 이익을 이어오며 승승장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억울할 수 있는 은행을 제외하고는 사회적 반발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은행은 처벌을 받고, 정책은 효과를 얻으며, 과징금이라는 재정 수입까지 발생한다. 원칙은 지켜졌고, 결과는 방향과 어긋나지 않았다.
법은 원칙을 묻고, 정책은 결과를 본다. 무엇이 남았는가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참 묘수다.
[컨슈머치 = 이용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