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은 한결같이 “영화는 극장에서, 가장 큰 화면으로, 여럿이 함께 보라”고 말한다.
낯선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순간을 통과하면서도, 소설처럼 각자의 머릿속에서 다르게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둘이 한꺼번에 성립하는 매체는 극장뿐이고, 그래서 극장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오랜 주장이다.
그러나 그간 국내 극장가에는 팬데믹이 몰아쳤고, 그 사이 소비자는 극장 영화보다 안방 TV 앞 OTT가 더 익숙해졌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올해 들어 놀란 감독의 말을 직접 시험해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관객은 5705만 명, 매출은 579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4.2%, 41.9% 늘었다.
<왕과 사는 남자>가 1690만 명을 모아 역대 박스오피스 매출 1위에 올랐고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군체>, <호프>, <살목지> 등이 3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뒤를 받쳐왔다.
그리고 <오디세이>가 왔다. 지난 5일 개봉 이후 예매가 열린 회차는 휠체어석을 빼고 사실상 전석이 매진됐다. 오전 7시 회차까지 팔렸고,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정가의 몇 배를 부르는 되팔이 글이 줄을 잇는다.
문자 한 통, 그리고 하나뿐인 날짜
그런데 여기서 사고가 났다. 8월 20일 <오디세이> 두 회차, 1248석의 예매가 일괄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CGV 용아맥 ‘오디세이’ 1200여명 일방 취소…"무늬만 보상">
사고가 난 상영관은 놀란 감독이 촬영한 1.43대 1 화면비를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상영관,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일명 '용아맥')다.
예매 오픈 전, 확정돼 있던 대관 일정이 운영 과정에서 누락된 채 예매가 열렸다는 것이 CGV가 밝힌 이유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예매자 1200여 명은 문자 한 통으로 통보를 받았다. CGV가 내놓은 보상은 전액 환불과 함께 ▲8월 27일 동일 시간·동일 좌석 관람 ▲IMAX 예매권 중 택일이었고, 회사는 이 외에 추가 보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1200여 명 전원에게 제시된 날짜는 단 하나, 8월 27일이다. 애초에 20일에 관람하고자 예매를 한 이들에게 어떤 동의도 없이 일주일 뒤 같은 시간, 같은 요일 관람을 통보했다. 취소를 ‘당한’ 소비자가 날짜를 통보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남은 선택지인 예매권은 더 곤란하다.
현재 용아맥은 예매가 열린 회차가 전부 매진 상태다. 취소된 예매자가 "예매권을 받아도 경쟁을 다시 뚫지 못하면 관람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상영관이 매진이라는 사실을 가장 정확히 아는 쪽은 CGV다.
원상회복과 배상은 별개, 비상식적 대응
이번 사안은 한 톨 애매할 것이 없는, 명백히 극장의 착오로 벌어졌다.
계약이 깨졌을 때 받은 돈을 되돌리는 것은 원상회복이다(「민법」 제548조). 원상회복은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절차일 뿐, 잘못에 매기는 값이 아니다
「민법」 제551조는 계약을 해제해도 손해배상 청구는 그대로 남는다고 못 박고 있다. 되돌리는 일과 물어주는 일은 별개라는 뜻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공연업에서 사업자 귀책으로 공연이 취소되면 입장료 환급과 함께 입장료의 10%를 배상하도록 정한 것도 같은 원리다. 환급은 원상회복이고, 10%가 배상이다.
문제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의 '영화관람' 항목이다.
'영화관람' 항목의 분쟁 유형은 ▲소비자 사정으로 인한 취소 ▲사업자 귀책에 의한 상영 지연 ▲사업자 귀책에 의한 상영 중단 세 가지뿐이다.
분쟁 유형에 ‘사업자 귀책으로 예매 자체가 취소된 경우’가 없다.
CGV의 조치가 법을 어기거나,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고 부르기 어려운 이유다.
극장가, 제 발등 찍는 일
놀란 감독이 ‘영화는 극장에서 보라’고 한 이유는 ‘경험’이었다. 집에서는 만들 수 없는 무언가가 극장에 있다는 것. 극장업이 OTT 앞에서 내밀 수 있는 카드도 그것 하나다.
그런데 경험은 상영관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표를 사는 순간부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응대를 받는지까지가 모두 극장에서 겪는 경험이다.
제아무리 인생에 남을 만한 영화여도, 상식적이지 못한 극장의 대응에는 결코 좋은 경험이 만들어질 수 없다.
오랜만에 사람이 돌아온 북적이는 극장가다.
좋은 경험을 팔아야 할 극장이 애써 나쁜 경험을 만드는 일은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발로 차는 꼴이다.
[컨슈머치 = 전정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