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알선 제안을 믿고 통장을 건넸다가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돼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처지에 놓였다.

직업이 없던 A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점에서 우연히 손님에게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았다.

이 손님은 취업을 알선해 주겠다고 제안하며, 취업 절차에 필요하다면서 A씨 명의의 통장과 현금카드, 비밀번호, 주민등록증 사본을 요구했다.

이후 A씨는 자신의 통장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피해자로부터 통장 명의자라는 이유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

A씨는 "가게 손님의 호의를 믿고 통장을 건넸을 뿐, 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사용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로그인, 비밀번호, 보안 (출처=PIXABAY)
로그인, 비밀번호, 보안 (출처=PIXABAY)

법제처 산하 한국법령정보원은 타인에게 자기 명의의 통장과 현금카드를 건네주고 비밀번호를 알려준 행위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에 대해서는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 및 제49조에 따르면, 현금카드나 비밀번호 등 전자금융거래에 사용되는 접근매체를 양도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구체적인 사용 목적을 알지 못했더라도 양도 행위 자체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해, 이른바 ‘대포통장’ 발생을 막기 위한 취지다.

따라서 A씨가 모르는 사람에게 통장과 현금카드를 넘기고 비밀번호까지 알려준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민사책임, 즉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 여부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단순한 물리적 원인관계가 아니라, 통장 제공 행위와 범죄 피해 발생 사이에 사회통념상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유사 사안에서 대법원은 ▲취업을 목적으로 통장을 제공한 점 ▲통장 제공에 따른 별도의 대가가 없었던 점 ▲취업 목적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도록 허락한 정황이 없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장 제공 행위와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피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통장 명의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한 바 있다.

다만 A씨가 상대방이 보이스피싱 조직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거나, 통장 제공의 대가를 받았거나, 취업 목적 외 개인적인 용도로도 사용하도록 허락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대법원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을 가능성도 있다.

[컨슈머치 = 전향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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