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지연으로 장시간 공항에 발이 묶인 소비자가 항공사에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소비자 A씨는 휴가를 맞아 가족과 동남아로 여행을 가게 됐다.

그러나 즐거운 여행의 마지막 날, 공항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했다.

게이트 앞에는 항공편 지연에 항의하는 승객들이 모여 있었고, 탑승 예정 시각은 이미 세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그제야 항공사는 기체 결함으로 운항이 취소됐다고 안내했다.

결국 A씨 가족을 포함한 승객들은 약 20시간이 지나서야 귀국편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A씨는 “항공편 지연 사실을 제때 알렸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항공사의 미흡한 조치로 하루 가까이 공항에서 시간을 허비했고, 업무에도 차질이 생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항공사 측에 정신적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항공편, 비행기, 해외여행, 공항(출처=PIXABAY)
항공편, 비행기, 해외여행, 공항(출처=PIXABAY)

A씨와 유사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항공편 지연으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출발지와 도착지가 모두 「국제항공운송에 있어서의 일부 규칙 통일에 관한 협약」(이하 ‘몬트리올 협약’) 당사국인 경우, 국제항공운송에 관한 법률관계에는 몬트리올 협약이 「민법」이나 「상법」보다 우선 적용된다.

다만, 협약은 항공운송의 일부 규칙에 대한 통일적 해석을 위한 것이므로 모든 사항을 포괄적으로 규율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협약에서 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국제사법에 따른 준거법이 보충적으로 적용된다.

「몬트리올 협약」제19조는 운송인이 항공운송 중 지연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손해의 내용이나 종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제17조에서 신체의 부상으로 인한 손해만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점 등을 고려하면, 제19조에서 말하는 ‘손해’는 재산상 손해에 한정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신적 손해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보충적으로 적용되는 준거법에 따라 정신적 손해에 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다.

대법원은 항공사가 항공기 결함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승객들에게 늦게 통보하고, 숙식 제공 등 필요한 조치를 지연한 점 등을 종합해 “항공사가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그동안 항공편 지연이나 결항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객에게 엄격한 입증책임을 요구하거나 항공사의 면책사유를 폭넓게 인정해 온 기존 경향에서 벗어나, 항공 이용 소비자의 권익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법령정보원은 해당 판결을 근거로, A씨가 항공사의 부당한 대응으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면 배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컨슈머치 = 고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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